증권가 '잔여지분 인수 통한 매입단가 낮추기' 예상

국내 증권업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마지막 '대어'로 꼽히는 현대증권 지분 22%가량을 인수하기 위해 KB금융지주가 베팅한 '1조원' 가격대의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 조짐이다.

애초의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파격적인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지난달 25일 마감한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에서 한국금융지주와 홍콩계 사모펀드(PEF) 액티스를 따돌리고 3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매각주간사인 EY한영 등에 따르면 KB금융은 1조원 초반대 금액을 제시했다.

EY한영 관계자는 "향후 확인 실사 등을 거쳐 가격 조정이 일부 진행되더라도 1조원 수준은 유지될 것으로 본다"며 KB금융이 제시한 가격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매각 대상 지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22.43%와 기타 주주 몫 0.13% 등 총 22.56%다.

현대증권의 31일 종가(6천870원)를 고려하면 KB금융이 제시한 인수가는 시가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반영해 시장이 원래 예상한 해당 지분 인수가격은 5천억~7천억원대였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선 KB금융의 지분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칫 KB금융이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곁들여지고 있다.

KB금융지주가 이처럼 높은 가격을 써낸 것은 한국금융지주와의 경쟁에서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윤종규 회장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국금융지주도 1조원을 넘게 썼지만 간발의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는 후문이다.

시장에서는 두 인수 후보가 제시한 가격 차가 수백억원이 아닌 수십억원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약 1조원의 인수가격은 작년 말 현대증권 순자산 가치 대비 약 1.33배 수준"이라며 "현대증권 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을 고려했을 때 다소 비싼 인수 가격"이라고 평가했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현대증권의 작년 말 장부가치는 7천450억원"이라며 "인수가가 1조500억원일 경우 장부가 대비 1.41배로 계산돼 상당히 고가에 사들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가 매입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치열하게 전개된 인수전에선 KB금융이 경쟁자를 제치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감수하긴 했지만 인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초기 인수 지분율이 22.56%에 불과해 향후 잔여 지분 인수 과정을 통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점을 들고 있다.

최정욱 연구원은 "현대증권 자사주 7.06% 및 잔여 지분 70.38%를 현 주가 내지 주식 교환을 통해 낮은 가격에 인수할 경우 전체 지분에 대한 평균 인수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수현 연구원도 "잔여 지분 77.44%를 사는 과정은 전통적 금융 인수합병(M&A)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장부가 이하로 사는 게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은 "상대적 매력도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 대우증권의 지분 43%가 PBR 1.3배에 매각된 점을 고려할 때 고가 매입을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KB금융 계열사인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결합을 통한 향후 시너지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고가 인수 논란이 부각될 수는 있지만 펀더멘털 관점에서는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KB금융이 취약한 증권부문의 외형적 기반을 단기간에 갖출 수 있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KB투자증권의 현 주식거래 점유율은 2.2%에 불과하나 현대증권과 단순 합산만 해도 6.5%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투자은행(IB)과 리테일 강점의 현대증권과 기업금융 강점의 KB투자증권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합병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조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KB금융 주가는 1일 오전 10시54분 현재 전날보다 1.26%(400원) 오른 3만2천250원을 나타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