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품은 KB금융] 윤종규발 증권업계 '지각변동'…금융지주 1등 싸움도 불붙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과감한 베팅을 앞세워 현대증권을 품에 안게 됐다. 증권사 인수 도전만 세 번째인 KB금융은 시장 예상을 훨씬 웃돈 1조원 이상의 인수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보험, 카드 등 기존 사업에 증권을 더해 ‘한국판 BoA메릴린치’를 육성하겠다는 KB금융의 꿈도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KB금융은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과 지난해 인수한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현대증권-KB투자증권의 은행·보험·증권 ‘삼각편대’를 앞세워 신한금융에 빼앗긴 1등 금융그룹 자리를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증권사 인수 숙원 이룬 KB금융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이번 인수전에서 KB금융이 승리한 것은 회계사 출신의 ‘재무통’인 윤 회장이 막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덕분이란 평가가 나온다.

KB금융 이사회와 윤 회장의 신뢰가 쌓이면서 지난해 말 고배를 마셨던 대우증권 인수전 때와 달리 과감한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인수는 KB금융의 숙원이었다. 윤 회장은 2014년 말 취임 후 비(非)은행 부문 수익 강화를 핵심 경영과제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비은행 수익 비중을 40%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은행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또 다른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KB금융에서 은행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인 데 비해 증권업은 3.5%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대형 증권사를 인수해 단번에 규모를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KB금융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가 줄어든 은행에 수익이 집중돼서는 리딩뱅크가 될 수 없다”며 “대형 증권사 인수는 생존의 필수요건”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KB금융 안팎에선 ‘다시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었다. 경쟁자인 한국투자증권의 인수 의지가 워낙 강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인수경쟁에서 2조4500억원을 쓴 미래에셋증권보다 3000억원가량을 적게 적어 실패를 맛봤던 윤 회장은 이번에 배수진을 쳤다. 현대증권이 사실상 마지막 대형 증권사라는 점에서 증권업을 키우기 위해선 이번에 꼭 인수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컸다.

그래서 윤 회장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말로 KB금융 이사회를 설득했다. 그 결과 입찰가격을 최종 승인하는 이사회에선 윤 회장의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 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은) 2006년 이후 10년간 7건의 인수합병(M&A) 경쟁에서 KB손해보험을 제외하고는 모두 패했다”며 “(현대증권 인수로) M&A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윤 회장의 향후 입지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회장은 이날 현대증권 우선협상 대상자 발표 직후 “이번 M&A는 인내와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결과”라며 “1등 금융그룹 위상 회복이라는 임직원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1위 금융그룹 도약 발판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국내 1위 금융그룹으로 재도약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합쳐진 BoA메릴린치와 같은 복합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증권 부문의 취약점을 보완하게 된 만큼 신한금융그룹과의 경쟁에서도 승산이 높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KB금융은 리테일(소매금융)과 투자은행(IB) 부문에 강점을 갖고 있는 현대증권 인수 이후 은행과 증권 협업을 통해 자산관리(WM)와 기업투자금융(CIB) 분야에 집중할 방침이다. 인터넷은행 출범과 핀테크(금융+기술) 확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등으로 금융업권 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KB금융의 지향점은 ‘자산관리 및 CIB 전문 금융회사’란 게 윤 회장의 판단이다.

BoA메릴린치는 2008년 BoA지주가 메릴린치를 인수한 이후 그룹 전체의 10% 수준이었던 WM 부문 비중이 20% 이상으로 커졌다. CIB 부문도 16%에서 38%로 두 배 넘게 성장했다.

세부적으로는 BIB(지점 내 지점·branch in branch) 형태의 KB투자증권과 국민은행의 복합점포를 초대형 복합점포로 확대할 예정이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현대증권이 KB금융에 들어오면 기존 현대증권의 신용도에 KB금융의 재무적 지원 가능성이 더해져 신용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현대증권을 적극 활용해 중수익·중위험 상품을 개발하고 해외 금융상품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도 KB금융발(發) 판도 변화에 휘말리게 됐다. KB금융이 현대증권을 인수해 자회사인 KB투자증권과 합 병시키면 자기자본이 4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증권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출범 시 자기자본이 약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통합 미래에셋대우증권’과 NH투자증권(4조5505억원)에 이은 국내 증권업계 3위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