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채권 팔아치우는 외국인, 왜?

비관론 - 북핵·중국 성장둔화로 한국 탈출
낙관론 - 환차손 우려해 포트폴리오 조정
외국인이 이달에만 보유 한국 채권의 5%를 팔아치운 이유는 뭘까. 시장과 당국은 이례적인 외국인 채권 매도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일부에선 한국 경제를 비관하는 외국인의 탈출 조짐이라고 우려한다. 원화 약세에 따른 일시적 움직임이란 시각도 있다. 향후 악재에 따라 금융 불안의 방아쇠가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거리다. 과거에도 위기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정체를 드러내곤 했다.
[외국인 빠져나가는 채권시장] '셀코리아' 시작인가, 원화약세 따른 일시적 손절매인가

◆하루에만 1조5000억원어치 팔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의 채권시장 이탈은 작년 12월(약 7800억원 순유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규모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이달 초다. 설연휴 직전인 지난 5일에만 외국인이 1조5000억원어치를 파는 등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이달 1~24일 외국인의 채권시장 순유출액(약 4조7000억원)은 1998년 채권시장 개방 이후 최대 순유출을 기록했던 2010년 12월(5조3000억원) 이후 최대다.

시장에선 한국 채권시장의 ‘큰손’인 프랭클린템플턴이 단기물을 대거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외국인이 주로 투자하는 국고채와 통화안정채권 등은 한국 경제 전망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공교롭게도 한국 시장 비관론이 최근 불거졌다. 지난 25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시아 자산시장 에디터인 제니퍼 휴스의 칼럼을 통해 “한국 자산을 팔아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경제가 부진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자금이 유출되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원화값 하락) 등 금융 상황이 안 좋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악재였다. 골드만삭스의 권구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시장은 북한 악재를 금방 떨쳐냈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예상치 못한 ‘꼬리위험(tail-risk: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충격이 큰 위험)’으로 발전하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포트폴리오 조정일 뿐”

지나치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다. 외국인은 최근 며칠간 장기물 위주로 한국 채권을 다시 사들였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이달 초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져 자금 유출이 있었지만 진정세로 돌아섰다”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에 대한 외국인 신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달 초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일시적 자금 유출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원화가치가 하락하자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이 원화 자산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경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부도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보다 환율 상승폭이 두드러졌다”며 “외국인의 원화 약세 베팅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지난 26일까지 원화값은 달러 대비 3.04% 하락했다. 주요 42개국 중 아르헨티나(-10.0%) 다음으로 크게 떨어졌다. 월가에선 원화를 중국 위안화의 대리통화(프락시·proxy)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 위안화 약세를 내다본 투자자들이 폐쇄적인 중국 시장 대신 한국에서 원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원화가 위안화와 비슷하게 움직일 것이란 전망에서다.

◆위안화 향방이 열쇠

최근 외국인의 채권 매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템플턴의 한국 채권 보유 비중이 너무 높아 시장 영향력이 지나쳤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매각으로 시장 쏠림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안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악재에 따라 ‘원화 약세→외국인 자금 이탈→다시 원화 약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시장은 펀더멘털보다는 센티멘털(sentimental·심리적 요인)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이 동요하는지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미/이태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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