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확 깎여도…증권사 애널리스트, 운용사행 왜?
스타급 펀드매니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자산운용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개별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고르던 방식에서 벗어나 리서치팀의 모델포트폴리오(MP:펀드 운용 시 사고팔아야 할 종목을 회사 차원에서 선별해 놓은 가이드라인) 중심의 투자 시스템이 확산되면서다. 고(高)연봉을 받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속속 자산운용사로 합류하고 있다.

◆‘CJ E&M 스캔들’이 몰고온 변화

연봉 확 깎여도…증권사 애널리스트, 운용사행 왜?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새해 들어 리서치부를 리서치본부로 승격했다. 애널리스트 수도 지난해 초 18명에서 현재 26명으로 8명(44%) 늘렸다. 웬만한 중소형 증권사들의 리서치 센터보다 큰 규모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주식운용부문 소속이던 리서치팀을 독립 부서로 승격하고 연구원 5명을 충원했다.

지난해엔 한화자산운용과 NH-CA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신자산운용 등 중형 운용사들도 리서치 부서를 신설하거나 확대 개편했다.

이 같은 흐름은 2013년 말 발생한 CJ E&M 정보 유출 사태와 무관치 않다. 당시 CJ E&M 직원은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실적 정보를 흘렸고 이 정보는 다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에게 전달됐다. 이 와중에 정보를 넘겨받아 투자를 한 매니저들이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는 등 큰 파문이 일었다. 한 펀드매니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매니저 개인 역량이나 네트워크로 기업 속사정을 미리 파악해 투자하는 관행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운용사들도 자체 리서치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몸값이 높은 스타급 펀드매니저에 의존하기보다는 리서치 중심의 운용이 훨씬 더 안정적이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보따리 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자산운용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30~40% 정도 낮은 연봉 탓에 자산운용사로의 이직을 꺼렸다. 하지만 증권사들의 구조조정이 수시로 이뤄지면서 고용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데다 장기 박스권 장세에서 괜찮은 종목을 발굴하는 것도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어서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따리를 싼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메릴린치증권 등에 몸담았던 윤만중 리서치센터장이 NH-CA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이창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과 최지호 SK증권 연구원 등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으로 명함을 바꿨다.

애널리스트들이 업계에서 갑(甲)으로 ‘군림’하는 자산운용업계를 선망하는 분위기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작성해 50~60개 운용사에 제공하고, 자신의 보고서를 잘 ‘세일즈’해야 몸값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자산운용사의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는 철저히 내부용이다. 영업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자산운용사로 이직한 한 애널리스트는 “잦은 야근에 구조조정, ‘을(乙)’로 사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두는 동료가 꽤 있다”며 “같은 일을 한다면 좀 더 편하게 살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자산운용사에선 펀드매니저로 역할을 바꿀 기회가 많다. 리서치와 펀드 운용을 동시에 하는 매니저의 수익률도 양호했다. 지난해(코스피지수 2.39% 상승) 박경륜 미래에셋자산운용 리서치본부총괄 이사가 운용한 미래에셋러브에이지변액보험펀드는 28.97%, 김종언 대신자산운용 리서치팀장의 아시아컨슈머펀드도 10.60%의 수익률을 올렸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