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컨소시엄이 인수 후보자로 선정됐습니다.”

작년 3월 말 국민연금공단 런던 사무소엔 탄식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영국 최대 항만관리회사 ABP의 지분 33%를 사기 위해 6개월 이상 공을 들였지만 이날 16억파운드(약 2조7000억원)를 써낸 CPPIB에 밀렸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ABP는 지난해 나온 유럽 최대 인프라 매물이었다. 국민연금은 캘퍼스(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네덜란드공무원연금(APG)과 편을 짜 가격을 써냈지만 CPPIB를 주축으로 한 캐나다·영국 연합군의 제시 가격이 더 높았다. 불과 몇 달 전 유럽 고속철도 인수전에서 캐나다 계열 연기금에 고배를 마신 터라 충격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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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전략 확 바꿔야 산다

전례 없는 투자 경쟁에 직면한 글로벌 연기금과 국부펀드들은 기존의 자산 운용 방식과 전략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채권 중심이던 기존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운용 조직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쟁자와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렸지만 지금은 투자 건을 따내기 위해 글로벌 연기금과 운용사 간 합종연횡도 불사한다.

세계 1위 국부펀드 운용사 노르웨이투자청(NBIM)은 작년 11월 당시 5% 수준인 부동산 투자 목표 비중을 15%로 대폭 늘리겠다고 밝혀 세계 부동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자산 규모(약 1027조원)를 고려하면 세계에서 120조원어치의 부동산을 추가로 매입하겠다는 의미였다. NBIM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자산에만 투자하던 보수적인 국부펀드였다. ‘보수 투자의 대명사’로 꼽히던 일본공적연금(GPIF)도 변신하고 있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자국 채권 투자 비중을 60%에서 39%로 줄였다. 9개월여 만에 270조원어치의 채권을 매각했다. 이 중 상당수는 일본 중앙은행이 매입했다.

네덜란드는 2008년부터 정부 연금운용조직을 APG로 잇달아 통합하고 있다. 운용 비용을 절감하고 규모 확대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국 최대 연기금인 영국통신연금(BT Pension Scheme), 호주 국부펀드인 퓨처펀드도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영국통신연금 관계자는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려면 운용 인력과 시스템 측면에서 민간 운용사 못지않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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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전문인력 영입 경쟁

캐나다, 중동, 싱가포르 및 중국 등의 국부펀드와 연기금은 운용 직원의 보수와 성과급을 대폭 끌어올려 글로벌 투자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외부에 주는 위탁 운용 수수료를 내부 운용 인력에 쏟아부어 자체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유럽 사모대출펀드(PDF) 운용사 파크스퀘어의 로빈 듀마 파트너는 “중국투자공사(CIC), 중국 외환관리국(SAFE) 등 중국 국부펀드는 보수를 두 배 이상 올리고 3~5년 임기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뉴욕과 런던의 운용 인력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APG나 미국 캘퍼스처럼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연기금들은 보수를 올리는 대신 근무 조건 개선, 민간 이직 허용 등의 방식으로 민간 인력을 끌어들인다. 특혜 시비 때문에 민간으로 옮기는 임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와 대조적이다.

투자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연기금도 있다. 네덜란드 2위 연금 운용조직인 PGGM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주식, 채권과 같은 전통자산을 패시브(지수를 추종하는 수동적 투자) 방식으로 운용한다. 운용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PGGM 최대 고객인 건강복지연금(PFZW)의 2014년 운용 수익률은 15.5%(10년 평균 연 7.9%)로 국민연금(5.25%)의 세 배 수준이다. PGGM 관계자는 “전체 운용 인력은 위탁을 통해 최소화하는 대신 대체투자 등에는 고급 인력을 채용한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자산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좌동욱/뉴욕=유창재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