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교육 논란에 발목잡힌 '공무원 권장도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사진)이 공무원 역량 개발을 위해 추진하던 ‘공무원 권장도서 50권’ 선정 작업이 4개월째 보류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최근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불거진 것을 의식해 인사처가 ‘몸 사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2015년 10월13일자 A29면 참조

인사처는 공무원이 반드시 읽어야 할 권장도서 50권을 선정해 지난해 10월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공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책을 선정하라는 이 처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처장은 “공무원이 책과 신문을 읽는 데 너무 소홀해 글로벌 감각이 떨어진다”며 “공무원이 사무실 안에만 갇힌 채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사회 현안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사처는 인문학 교수 등 20명가량의 전문가 자문을 거쳐 권장도서 목록을 추렸다. 목민심서 난중일기 열하일기 장자 논어 군주론 국부론 등 동·서양 고전이 주로 포함됐다. 당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권장도서에 포함됐지만 이념 논란을 의식해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처는 당시 50권을 선정해 지난해 10월 말 발표한 뒤 올초 50권을 추가 선정할 계획을 세웠다. 향후 신임 관리자 교육과정이나 승진자 교육과정에서 교육생을 대상으로 독후감을 쓰게 해 권장도서를 읽도록 하겠다는 것이 인사처의 설명이었다. 5급 공무원 시험 및 5·7급 민간경력 공무원 채용의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 언어논리 영역에서 권장도서 내용을 지문으로 출제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인사처의 이 같은 계획은 4개월째 표류 중이다. 지난해 10월께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불거지자 인사처는 곧바로 권장도서 발표를 취소했다. 역사 국정교과서와 맞물려 권장도서가 공무원에게 사상 교육을 시킨다는 공무원노조 등의 반발을 의식해 계획을 보류한 것이다. 같은해 11월 5급 공무원 최종 면접시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 ‘사상 검증식’ 질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당초 권장도서 1순위로 선정한 목민심서가 공무원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지에 대해 인사처 내부에서도 다른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 때 목민관의 바람직한 역할을 다룬 목민심서가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인사처 관계자는 “사회적 논란을 의식해 권장도서 선정 작업은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