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사진)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갑부로 저평가된 주식을 장기 보유해 시세차익을 얻는 ‘가치투자’ 기법을 전 세계에 전파해 왔다. 종목을 고르는 눈이 남다른 버핏이지만 2015년은 예외였다. 113억달러(약 13조원) 안팎의 투자 평가손실을 입은 것. 주요 언론들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라고 버핏의 추락을 보도했다. 도대체 버핏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치투자 달인' 버핏, 113억달러 손실 낸 까닭
◆궁지에 몰린 버핏

버핏이 38%의 지분을 소유한 벅셔해서웨이 주가는 지난해 12.47%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1년간 주가가 32% 폭락한 2008년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주식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탓이다.

지난해 버핏이 부지런히 사들였던 IBM은 2015년 한 해 동안 14.22% 하락했다. 실적부진이 문제였다. 버핏은 “IBM의 주가 약세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3분기에 주식을 추가로 사들였지만 주가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버핏의 내수주 빅3’로 꼽히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프록터&갬블, 월마트 등도 낙제점에 머물렀다. 이 세 종목의 주가는 지난해 각각 25.25%와 12.82%, 28.62% 떨어졌다.

하지만 버핏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50년간 그랬던 것처럼 꾸준한 이익이 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IBM의 실적이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은 145억6800만달러에 달했다. 월마트(147억6200만달러), 프록터&갬블(105억9700만달러) 등도 그 나름대로 견실한 이익을 냈다.

바뀐 것은 시장 참여자들의 선호다. 지난해 넷플릭스, 아마존 등의 주가는 두 배 이상 올랐고,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과 페이스북도 각각 40%와 30% 상승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 기반을 둔 혁신 기업들은 지지부진한 장세에서도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 이런 종목들은 ‘합리적인 가격’을 중시하는 버핏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 아마존의 주가수익비율(PER·현재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100배가 넘는다.

◆권토중래 가능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내년에 70세가 되는 버핏은 너무 보수적이다. 그는 기술주들의 호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투자전문매체인 배런스지가 1999년 12월 커버 스토리로 다룬 내용이다. 이 매체는 닷컴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담지 않은 버핏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말에 쏟아졌던 버핏 관련 기사들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70세’였던 버핏의 나이가 ‘86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1999년엔 버핏이 완승을 했다. 배런스지의 기사가 나가고 불과 몇 개월 뒤부터 ‘닷컴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닷컴 기업 주식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버핏은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2016년의 버핏은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기업들의 가치는 버핏이 좋아하는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다”며 “자산가치와 이익 흐름만 좇는 투자법으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세계적 디플레 시대에 일시적으로 가치주가 하락한 것일 뿐이란 시각도 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원자재 가격도 충분히 빠진 상태”라며 “버핏을 비롯한 가치주 투자자들이 권토중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버핏에 대한 최종 평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성장주-가치주 논쟁의 향배도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르면 올 연말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