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는 삼성전자가 8일 발표한 작년 4분기 잠정 실적에 대해 '실적 충격'(어닝 쇼크)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 낮아진 시장의 눈높이에도 못 미쳤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만, 이미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주가에 반영돼 당장 증시에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산업의 부진이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가운데 올해 1분기에도 부진한 실적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낮아진 시장 눈높이도 밑돌아
이날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에 6조1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이는 작년 3분기 7조3천900억원보다 17.46% 감소한 것이다.

매출액은 53조원으로, 전분기(51조6천800억원)보다 2.55%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최근 들어 한층 더 낮아진 시장 기대치에도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4일 기준으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25개 증권사의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치 평균은 매출 53조4천600억원, 영업이익 6조6천800억원이었다.

작년 3분기에 반도체 부문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며 영업이익 7조원대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작년 4분기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부문의 수요 부진과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애초 예상보다 컸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방산업 수요 부진으로 D램 가격 하락 폭이 예상보다 컸고 애플이 올해 1분기 수요 부진에 대비해 부품 재고를 빠듯하게 가져간 점도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사업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요 위축이 영향을 주면서 메모리 반도체, LCD 등이 저조했고 스마트폰 출하량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중저가 위주였던 것이 전체적인 실적 저조의 원인으로 해석된다"며 "'어닝 쇼크'까지는 아니지만 기대 이하"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부문별로 반도체 3조∼3조1천억원, IM(IT·모바일) 2조원, 디스플레이 3천억원, 소비자가전(CE) 7천억∼8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4분기 성수기 효과를 누린 CE 부문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감익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다 안 좋다"며 "전분기 대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각각 6천억원, IM에서 3천억원 정도 줄고, CE에서 4천억원 정도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주가는 기술적 반등…일각에선 "시장에 악재 더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에도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애플의 아이폰 판매 부진 영향은 작년 4분기뿐 아니라 올해 1분기에도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노근창 연구원은 "올해 1분기에도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계절적인 비수기인데다 반도체 등의 가격 인하가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분기 이후에 대해서는 실적 전망이 다소 엇갈렸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 설비 투자 감소로 인한 수급 개선과 시스템LSI의 가동률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개선이 2분기 이후 이익 증가를 견인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글로벌 IT 수요 개선이 어렵지만, 메모리 반도체·TV·스마트폰 등 주력 제품이 점유율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전장 사업팀과 드론 준비 조직 구성, 바이오 프로세서 원칩 개발 등 장기 성장 동력 확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업종 내 최선호주로 유지했다.

반면 이승우 연구원은 "환율 때문에 매출이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달러 기준으로 보면 실제로는 3년 연속 매출이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며 "2020년까지 매출 400조원을 달성할 것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8천원(0.69%) 오른 117만1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JP모건 등 외국계 증권사가 매수 상위 창구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의 눈높이가 낮춰진데다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주가에 선제적으로 반영된 탓에 이날 삼성전자의 잠정 실적 발표가 당장 시장에 준 충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증시 급락 등의 여파가 있기는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는 새해 들어서만 전날까지 7.7% 하락했다.

김경민 연구원은 "현재 주가는 올해 추정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8.5배, 주가순자산비율(PBR) 1.0배로 저평가됐다"며 "주가의 하방 경직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재윤 연구원은 "스마트폰 부문의 양호한 실적, 메모리 반도체와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 1.0배 이하에서는 저가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만, 4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다른 대형주로 확산되며 가뜩이나 중국 증시 급락 등 글로벌 악재에 휘청거리는 국내 증시에 향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주가가 많이 빠져 있었던데다 최근 자사주 매입을 계속하면서 기술적인 반등이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4분기 실적이 기대 이하인 만큼 전체적으로 업종 대표주들에 대한 실적 기대치가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매크로팀장은 "시장의 투자 심리를 돌려놓으려면 경기 요인, 실적 요인 중 낙관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실적은 지금 시장 상황에 악재를 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hanajj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