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21일 오후 4시31분

500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약 22조원에 달하는 해외채권 투자자산의 환헤지(위험 회피) 전략을 바꾼다. 현재 100%인 해외채권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앞으로 2년에 걸쳐 0%까지 축소키로 했다. 대신 해외 주식과 부동산 등 전체 해외 투자 자산을 통합, 달러 유로 엔 위안화 등 통화들을 적정 비율로 조합해 자연스럽게 환헤지 효과를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02년 해외 투자에 나선 이후 13년 만에 국민연금이 환헤지 정책에 ‘대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평가다.
[마켓인사이트] 국민연금, 해외자산 환헤지 전략 바꾼다
환헤지 대신 통화 포트폴리오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해외채권 분야의 환헤지 비율을 2017년까지 0%까지 축소하는 방안을 오는 24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해외 주식과 해외 대체투자의 환헤지 비율을 0%로 낮춘 데 이어 자산군별로 달리하고 있는 환헤지 전략을 전체 자산을 통합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해외주식 해외채권 해외대체투자 등 자산군별로 환헤지 비율을 따로 관리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다.

해외 투자자산에 대한 환헤지 전략을 통합 관리로 바꾸려는 것은 인위적인 헤지전략이 비용 부담만 초래할 뿐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외 자산이 100조원(9월 말 기준 117조원)을 돌파하면서 해외 주식, 채권, 대체 자산을 환율 관점에서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3년 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환헤지 전략을 다각도로 검토, 해외 주식과 해외 대체 자산에 대한 환헤지를 지난해부터 없앴다. 환율 변동보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자체의 가치가 오르내리는 변동폭이 더 크다고 판단해서다. 당시 해외채권에 대해서만 헤지를 유지한 이유는 만기까지 안정된 이익을 제공하는 채권 자산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국민연금은 해외채권의 환헤지 비율이 0%가 되는 2017년부터 전체 해외자산을 통합해 환율 노출 위험을 관리할 방침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의 자산을 사고팔 때 서로 다른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통화들을 적정 비율로 조합해 자연스럽게 헤지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MSCI지수를 구성하는 통화 비중에 맞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군별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뿐만 아니라 통화별로도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외환 스와프시장 왜곡 방지

국민연금은 전체 해외채권 투자금액이 늘면서 협소한 국내 외환 스와프시장에 왜곡을 가져오는 데 부담을 느껴왔다.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 500조원 가운데 해외채권에 21조7000억원(4.3%)을 투자하고 있다. 2043년 전체 기금 자산규모가 2500조원으로 늘어나면 해외채권 자산도 100조원 이상으로 증가한다.

국민연금은 환헤지를 위해 원화로 달러 현물을 사는 동시에 달러를 선물로 파는 ‘외환 스와프 거래’를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억달러 규모 미국 국채 10년물을 매입할 때 국내 달러 현물시장에서 1억달러를 현재의 환율로 매입하는 동시에 달러 선물시장에서 1억달러를 매도해 환율 변동의 위험을 회피하는 식이다. 달러 매도 때 환율은 현재 환율에 양국의 금리차를 계산한 ‘스와프 포인트’를 더해 적용한다. 한 시중은행 외환 딜러는 “국민연금은 이 같은 헤지계약을 1~3개월 단위로 계속 갱신해왔다”며 “환헤지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외환 스와프시장에서 3개월 이내 단기물 거래 가운데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가 넘는다. 국민연금이 외환 스와프시장에서 수요를 공급보다 키우면서 원·달러 환헤지를 위한 거래조건(스와프포인트)이 이론가격보다 낮게 결정돼 그동안 국민연금에 불리하게 작용해왔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앞으로 해외채권 자산규모가 커지면 거래조건은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다. 한 외환 전문가는 “악화된 조건으로 인위적인 환헤지를 하기보다 통화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환헤지를 하는 게 시장에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이번 환헤지정책 변화가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외환 스와프시장에서 금리(스와프포인트)는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환헤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없애기 위해 미래 거래 시점의 환율을 현재 환율로 미리 고정하는 방법 등을 말한다. 환율이 오를 경우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환율이 내릴 경우 손해를 막는 효과가 있다.

서기열/좌동욱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