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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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전업 투자를 하던 A씨 등 다섯 명은 2013년 초 인터넷에서 “미국 주식시장에서 초단타 매매로 돈을 벌 아시아인을 찾는다”는 광고를 접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투자자 알렉산더 밀러드(50)를 중심으로 모인 ‘다국적 연합군’은 각 나라에서 계좌를 개설해 시세를 조종하면 미국 감독당국이 혐의 계좌를 그룹화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들은 각각 다른 가격에 대규모 매도 주문을 쏟아내 주가를 대폭 떨어뜨린 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들이는 초단타 레이어링기법으로 지난 2년간 190만달러(약 22억원)를 챙겼다.

기관 연루 범죄 잇따라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망이 촘촘해지면서 이를 피해가기 위한 시세조종꾼들의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추적이 어려운 해외 주식시장으로 나가는가 하면 방을 폐쇄하면 정보가 사라진다는 점을 노리고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사례도 나왔다. 회계사 등 미공개정보 이용자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어 불공정거래 제재 수단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공정거래는 크게 △시세조종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보유 주식 등을 더 높은 가격에 처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높이는 시세조종과 정보가 공개되기 전에 주식을 매매하는 미공개정보 이용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의 수단을 활용한 불공정거래는 부정행위로 분류해 처벌한다.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소위 ‘꾼’들에 의한 시세조종이 전체 불공정거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 자본시장이 대형화·효율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적발되기 쉬운 단순 시세조종보다는 조직화한 시세조종이나 미공개정보 이용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다.

중소기업 임직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미공개정보 이용자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화그룹과의 ‘빅딜’ 정보를 이용한 삼성테크윈 임직원이 검찰에 넘겨지는가 하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등 특수회사의 합병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도 처음 적발됐다.

회계사와 연기금 운용역 등 금융 관련 기관 직원들의 범죄도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내 4대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은 감사 대상 기업의 공시 전 미공개 실적 정보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 최대 5억5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겨졌다.

H공제회 운용역은 매수 예정 주식을 공모자에게 미리 알려 매수 주문을 내게 하고 이후 공제회 계좌로 높은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1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사건당 부당이득 다섯 배 급증

고도화하는 매매분석기법에 대응해 불공정거래 수법 역시 진화하고 있다.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미국 금융회사 타워리서치의 알고리즘 시세조종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13년께 야간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 미리 설정된 조건에 부합하면 자동으로 주문이 실행되는 알고리즘 매매로 초단타 매매 주문을 냈다. 이를 통해 챙긴 부당이익은 141억원에 달했다.

내부 관계자가 외부 세력과 짜고 조직적으로 시세조종을 하는 것도 최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올 들어서만 코스닥시장 A사 대표와 코스닥 상장사 B업체의 오너가 보유 주식을 고가에 처분하기 위해 시세조종 세력과 결탁해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달 검찰이 기소한 증권가의 불법 블록딜사건 역시 경영진과 외부자인 증권사 직원이 연계됐다는 점에서 조직적인 수법으로 분류된다.

범죄수법은 진화하고 있지만 국내 처벌은 형사처벌 위주여서 부당이득 환수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형사처벌은 요구되는 입증 수준이 높은 데다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서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서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위법성 정도가 낮은 불공정거래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탄력적으로 징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