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엘리엇의 '수상한' 옛 삼성물산 주식스와프
마켓인사이트 12월9일 오후 4시37분

금융당국이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의 합병 전 옛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투자은행(IB)들과 이례적인 주식 스와프 거래를 한 것을 포착했다. 이 스와프 거래의 적법성 여부가 앞으로 엘리엇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9일 IB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5~6월 다수의 IB와 삼성물산 주식에 대한 총수익스와프(TRS·토털리턴스와프)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엘리엇이 IB들에 삼성물산 주식을 대신 사달라고 주문하면서 일정 수수료를 주고 매매에 따른 손익은 자신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TRS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TRS는 은행이나 헤지펀드가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기업들도 경영권 방어 등의 이유로 활용했던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경위를 파악하면서 TRS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엘리엇뿐 아니라 엘리엇과 계약을 맺은 다수의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왔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엘리엇과의 TRS 계약서를 확인하고 이면계약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올 1월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조금씩 장내매수해 지분을 5% 가까이 취득했던 엘리엇은 5월께 삼성물산 주식 1~2%에 대한 TRS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발표되자 엘리엇은 6월 초 TRS를 정산하는 동시에 추가로 장내에서 주식을 취득해 총 7.12%의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그런데 엘리엇이 6월3일 추가로 장내에서 매수했다고 공시한 339만3148주(2.17%)에는 TRS 정산시 IB로부터 넘겨 받은 삼성물산 주식이 일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TRS에서 수익이 나면 현금으로 정산한다. 그런데 엘리엇은 삼성물산 TRS 수익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 현물(삼성물산 주식)로 대신 받았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TRS 정산을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했기 때문에 단순 TRS 거래가 아니라 고의로 지분 보고 의무를 피하기 위한 ‘매매예정계약’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며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았던 파킹 거래 의혹을 입증할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법상 TRS를 통해 매입한 주식의 의결권과 소유보고 의무는 실제 투자자(엘리엇)가 아닌 대신 주식을 사준 계약자(외국계 IB)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겉포장만 TRS이고 사실상 주식 추가 매입을 염두에 둔 매매예정계약이었다면 엘리엇은 ‘지분 5% 보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 매매예정계약은 투자자가 직접 매입을 전제로 계약 상대방에게 미리 주문을 넣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는 주식의 의결권과 지분 보고 의무가 투자자에게 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께 엘리엇 TRS 계약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총수익스와프

TRS·토털리턴스와프. 기초자산의 손익을 계약 상대방과 맞교환하는 파생상품. 투자자가 계약자에게 주식 등 기초자산을 대신 사달라고 주문하면서 일정 수수료를 주는 대신 매매에 따른 손익은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구조다. 해당 주식의 의결권과 소유보고 의무는 투자자가 아닌 계약자에게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