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금 유치위해 수익률 약정…금융상품 만기차 이용 '자전거래'
남부지검, 임직원 7명 기소

"수익률 이면약정 관행 지속땐 증권사 잠재부실로 이어져"
고수익 약정하고 9567차례 돌려막기…연기금 돈 59조 불법 거래한 현대증권

8조원이 넘는 각종 연기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면서 불법적으로 수익률을 약정하고 ‘계좌 간 돌려막기’식으로 59조원대 자전거래를 벌인 현대증권 임직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감독당국은 연기금과 증권사 간 수익률을 사전에 약정하는 불법 관행이 업계에 만연했다고 보고 다른 증권사로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박찬호)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현대증권 전 고객자산운용본부장 이모씨(55) 등 임직원 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전 신탁부장 김모씨(51) 등 3명을 각각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1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우정사업본부와 고용노동부 등의 연기금을 유치하기 위해 총 834회에 걸쳐 이들 기관에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겠다고 약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체가 투자자에게 수익률을 약정하는 행위는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현대증권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연기금 채권형 랩·신탁 시장에서 8조9024억원(점유율 22%)을 유치해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연기금과 약정한 높은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해 현대증권이 택한 방식은 계좌와 금융상품 간 만기 차이를 활용한 ‘자전거래’였다. 회사 내부 계좌 간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자전거래 역시 자본시장법상 엄격히 금지된 행위다. 현대증권은 주로 단기(6개월 만기)인 랩, 신탁계좌에 고금리·장기(3년 만기) 상품인 기업어음(CP)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을 편입해 운용했다. 일반적으로 단기 계좌에 만기가 돌아오면 보유하고 있던 장기 CP 등은 시장에 매각해 투자자에게 환급하거나 매각이 어려울 경우엔 실물을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증권은 만기가 돌아온 계좌에 있던 CP 등을 자신들이 운용하는 다른 기금계좌에 매각하고 대금을 기존 계좌에 환급하는 방법(돌려막기식)으로 자전거래를 했다. 이런 식으로 현대증권이 자전거래를 벌인 규모는 9567차례에 걸쳐 약 59조원에 이른다.

불법 자전거래가 발생하는 배경엔 증권사가 연기금 등 기관에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이면약정’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등 연기금들은 자금을 맡을 운용사를 선정하기에 앞서 주요 증권사에 목표수익률이 명시된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형식상으로는 구속력이 없지만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증권사들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확정수익률’로 통용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연기금은 기금운용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기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익률 보장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을’인 증권사 입장에서는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자전거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익률 보장 관행이 증권사의 잠재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증권사가 받아야 할 운용보수를 할인해 약정수익률을 맞추기 때문이다. 운용보수 할인으로 증권사의 잠재 부실이 늘어나면 해당 증권사로부터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매입한 일반 투자자에게도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

■ 자전거래

대량 주식 매매를 중개하는 증권회사가 두 개 이상의 내부 계좌를 활용해 특정 주식을 반복적으로 사고파는 행위. 한 계좌에서 매도주문을 낸 뒤 해당 가격과 수량을 다른 계좌에서 동일하게 매수 주문을 내고 거래를 체결한다. 거래량 급증으로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증권거래소에 신고해야 한다.

오형주/이유정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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