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19일 오후 2시56분

벤처 대주주 범위 확대·주식 양도세율 두 배로…내년부터 '엔젤투자' 날개 꺾이나
내년 중소·벤처기업의 ‘대주주 요건 강화’를 앞두고 엔젤투자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양도소득세 부담을 우려한 엔젤투자자들이 대주주 요건을 피하기 위해 투자를 줄이고 있어서다.

19일 엔젤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새로 등록한 엔젤투자자 수는 122명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월평균 신규 등록자 222명(총 1997명)의 절반 수준이다.

업계에선 엔젤투자 시장이 위축되는 배경으로 ‘대주주 요건 강화’를 꼽는다. 내년 적용하는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양도소득세를 무는 대주주 범위가 기존 유가증권 상장사는 지분 2% 이상(또는 시가총액 50억원 이상)에서 1% 이상(25억원 이상), 코스닥 상장사는 4% 이상(40억원 이상)에서 2% 이상(20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비상장 중소기업은 대주주 여부와 관계 없이 10%의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하지만 내년부터는 지분 1% 이상(25억원 이상) 보유하면 대주주로 분류된다.

중소기업 대주주에겐 기존(10%)의 두 배인 20%의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주주 범위 확대는 내년 4월1일부터, 양도소득세율 인상은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연간 약 1300억원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는 창업 3년 이내(또는 벤처기업 인증 3년 이내) 기업에 신주 형태로 투자하는 엔젤투자자는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창업한 지 3년이 넘은 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의 비중이 더 높아서 실제 세금을 면제받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으로 투자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엔젤투자자는 벤처기업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소액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를 말한다.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 금액으로 4~5% 안팎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한 기업이 향후 벤처캐피털 등에서 추가 자금을 유치하거나 코스닥시장 등에 상장해 지분율이 희석돼도 지분율이 2% 이상인 엔젤투자자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엔젤투자자는 세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대주주로 분류돼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엔젤투자자가 장외에서 주식을 파는 길을 택하더라도 20%에 달하는 양도세 폭탄을 맞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엔젤투자자들은 앞다퉈 벤처기업 보유지분 매각에 나서고 있다. 연말까지 주식을 팔면 기존 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소득공제 등 세제 혜택에 매력을 느껴 엔젤투자를 해 온 투자자들은 신규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내년 ‘엔젤투자 절벽’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는 “엔젤투자는 높은 실패 확률을 안고 투자하는 모험 자본”이라며 “대기업 대주주와 같은 선상에 놓고 세금을 부과하면 투자 유인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시장 큰손들은 명의를 분산하는 기법 등을 통해 과세를 피할 것이 뻔해 결국 순수 엔젤투자자들만 세법 개정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권이 창조경제 활성화를 통해 양성한 엔젤투자자 1만명이 상장사 대주주 강화와 양도소득세 확대로 고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