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에 빠진 주식시장] 깜깜이 기업분석·고무줄 회계에 "대기업 실적 전망도 못믿겠다"
대형 상장사들이 잇따라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하면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투자분석 업무를 맡은 노련한 애널리스트조차 주요 대형주의 2분기 실적 추정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증권사들의 ‘깜깜이 기업분석’과 감독당국의 ‘고무줄 회계기준’이 상장사와 시장의 정상적인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성 없는 ‘미공개 정보’ 규제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실적 전망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매년 증권사의 실적 추정치와 실제 발표치는 괴리가 있었고 2013년 상반기 건설업계의 주가 폭락을 야기한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을 비롯해 어닝 쇼크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네이버,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LG전자, 한미약품 등 주식시장 간판급 대형 종목이 줄줄이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증권업계는 이처럼 어닝 쇼크가 급증한 요인으로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시장교란행위 건전화조치’가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새로 도입된 시장질서 교란행위 규제는 미공개 중요 정보를 간접적으로 듣고 투자에 나선 사람이나 2차, 3차 정보 전달자도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간주해 과징금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해당 정보를 이용할 목적이 없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어 제도 시행 전부터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기업탐방 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그 결과 ‘깜깜이 기업분석’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상장사와의 대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기업 실적을 추정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미공개 정보’의 범위를 과도하게 규정한 것도 부담이다. 현행 시행령에서는 △전자공시(DART 또는 KIND)에 공개한 지 3시간이 지나지 않은 정보 △지상파 방송에서 공개한 뒤 6시간 이내 정보 △2개 이상 신문에 실린 뒤 다음날 6시간이 경과되지 않은 정보 등 사실상 인터넷 모바일 등을 통해 전 투자자에 공개된 정보라도 ‘미공개 정보’임을 미리 알았다면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규제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애널리스트 ‘보신주의’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자칫 시장 활력과 정보 생산의 인센티브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애널리스트가 기업분석과 탐방을 통해 얻은 정보를 ‘공공재’로 보고 기관과 개인에게 똑같은 시간에 공개하라는 것은 시장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론 애널리스트의 기업분석 역량 부족과 증권사의 상장사 눈치보기가 ‘깜깜이 분석’을 양산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애널리스트업이 정착한 지 15년가량 됐지만 여전히 기업의 본질가치를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장이 좋으면 실적 ‘과대 추정’이 난무하고 장이 나쁘면 ‘과소 추정’으로 쏠리는 부끄러운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손실 처리 시점, 아무도 몰라”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처럼 건설·조선사에 어닝 쇼크가 집중된 배경에는 ‘고무줄 회계기준’도 영향을 미쳤다. 현행 회계기준상 수주사업은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수익을 분기별로 나눠 인식하는 반면 실제 감리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미청구 공사’에 대해선 채무로 인식하지 않는다. 실제 공사대금을 청구하지 못했지만 빚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관련 법령이 장기 수주사업을 하는 건설·조선사에 일종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지만 미청구 공사가 채무가 아닌 까닭에 상장사들은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미청구가 확정되는 순간 한꺼번에 비용(손실)으로 처리하면서 대규모 적자가 속출하고 있다.

상장사가 장기 공사를 하면서 늘어난 원가를 언제 장부에 반영하느냐도 관건이다. 공사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매출액 대비 원가율을 조정해야 하는데 상장사가 손실을 늦게 잡을수록 어닝 쇼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우조선해양이 ‘빅배스(부실 털어내기)’를 언제 실시할지, 건설사가 미분양을 언제부터로 인식할지는 전적으로 회사 측의 판단에 달려 있다”며 “손실 인식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점쟁이의 영역인 만큼 투자자들로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허란/민지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