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 부의장(왼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 부의장(왼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차등의결권제와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poison pill) 등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최근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분쟁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투기성 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2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내 기업이 투기성 자본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며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은 다음주에 법안을 낼 계획이다. 법안의 핵심은 기업이 차등의결권제와 포이즌 필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제는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다른 주주의 주식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행 상법은 1주 1의결권만 허용하고 있다.

정갑윤 "차등의결권·포이즌 필 도입 시급"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차등의결권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창업자 집안인 포드 일가는 회사 주식의 7%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을 통해 4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스웨덴 대기업 발렌베리 역시 창업자 일가가 지주회사인 인베스트사(社)의 지분 19%로 41%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차등의결권제는 선진국 대부분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라며 “한국도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의 신주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부여하는 제도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세력이 지분을 확보하기 어렵게 하는 장치다. 미국은 1982년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S&P500 상장기업 중 3분의 2가 시행하고 있다.

정 부의장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내기로 한 것은 국내 기업이 외국계 투기 자본의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정상적인 경영 활동보다 경영권 방어에 시간과 비용을 허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 부의장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을 공격한 것에서 보듯이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투기 자본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중소기업은 적대적 M&A에 더 취약하다”며 “대기업만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도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은 ‘대한민국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은 국가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에 지장을 주거나 대한민국의 법령을 위반하는 경우에만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 장치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2010년 3월 포이즌 필을 도입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대기업 총수의 지배권을 공고히 한다는 비판에 가로막혀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