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 표대결서 진 엘리엇 향후 행보는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완패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향후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높다.

엘리엇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합병안 승인이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합병 반대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다. 합병 계약서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쳐 1조5000억원 이상의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행사가격은 삼성물산 5만7234원, 제일모직 15만6493원이다. 17일 종가를 기준으로 삼성물산(6만2100원)은 행사가격보다 8.5%, 제일모직(17만9000원)은 14.38% 높다. 다음달 6일 마감 때까지 주가가 행사가격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대규모로 청구권이 행사될 가능성은 작다.

법조계와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엘리엇이 각종 소송을 통해 ‘분쟁 동력’을 유지하는 데 골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주총 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KCC 보유지분이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보유지분의 의결권 효력 등을 걸고넘어지는 경우도 거론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존 가처분 신청이 모두 기각된 데다 이미 주총 표결에서 찬성이 결정된 상황에서 어떤 소송을 하더라도 엘리엇의 승소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하지만 승패와 관계없이 중장기 소송전을 통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엘리엇의 기존 행태를 감안할 때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SDI, 삼성화재 등 삼성물산 주주 계열사로 전선을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주에 오른 뒤 삼성SDI, 삼성화재 지분을 1% 이상씩 사들였다. 상법상 1% 이상 주주들은 회계장부열람권, 주주대표소송 등의 권한을 가진다. 법조계에서는 이들 주주계열사 임원을 상대로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엘리엇은 지난 5월 국내 한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이들 계열사 임원의 신상정보를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엘리엇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넥서스의 최영익 대표 변호사는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하는 방안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IB 임원은 “그동안 해외에서의 과격한 행보와 비교하면 의외로 얌전한 편”이라며 “엘리엇은 처음부터 삼성그룹 전체를 겨냥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번 합병 저지 무산을 계기로 맨얼굴을 드러내고 총공세를 본격화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