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이념 로봇으로 실현할 것"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59)는 27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국내 로봇산업 1세대’다. 1988년 삼성항공 로봇개발팀장이 그 시작이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그가 일궈온 유진로봇의 시가총액은 1,394억 원(9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닥 344위다. 1069개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중상위 수준. 지난해 매출 368억 원, 영업이익 4억원, 2억4000여만 원의 순손실(주당순이익 -12원)을 냈다. 코스닥기업으로선 그렇게 내세울 만한 경영 성적표는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우선 최근 성장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260억 원)에 비해 41% 늘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청소로봇 ‘아이클레보’와 산업용 로봇 등의 수출이 꾸준히 늘어난 덕분이다. 전체 매출에서 지능형로봇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56.7%에 이른다. 2013년(21.6%)과 2012년(20.0%)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선다. 세계적인 명품 가전업체 독일의 밀레 등을 상대로 수출시장을 뚫은 결과다. 수익성도 좋아지고 있다. 올 1분기 매출 79억 원에 순익 9174만 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주당순이익(4원)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외환위기 때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도 포기한 로봇사업을 그가 계속 이어온 동력은 무엇일까. 30년 가까이 위기도 많이 겪었던 그에게는 ‘로봇산업 1세대’라는 책임감이 있었다. 대기업 전문경영인들이 로봇산업을 일으킨다며 2~3년씩 관심을 가졌지만 로봇관련 단체장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경영 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산업 1세대로서 국가적인 기대도 받고 있지만 생각보다 산업이 커지지 않고 있어 부담을 느낀다“며 심리적 중압감도 드러냈다.
[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이념 로봇으로 실현할 것"
◈컴퓨터를 응용한 로봇산업 1세대

-로봇을 하게 된 계기는.

“로봇이 좋아서 시작했다. 1976년 대학(서울대 기계설계학과)에 들어갔는데 그 때가 한국에 로봇이 수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로봇은 기계설계 뿐 아니라 전기전자 컴퓨터 항공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미시간대(기계공학 박사과정)에 유학을 가보니 로봇공학 연구가 한창 뜨고 있어 박사 논문을 로봇에 관해 썼다. 로봇 연구 붐이 일던 시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학한 고교 대학 동기들 가운데에도 로봇을 연구한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지금 각 학교나 연구소에 교수로 재직중이다.”

-로봇을 개발하려면 기계설계 뿐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1970년대에 한국의 이공 대학에서는 옛날 전통 학문만 있었다. 신학문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때 배운 교수님들이 역학이나 재료학 위주로 가르쳤다. 대학에 입학하니 그 때부터 로봇을 연구하는 붐이 일었고,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제조(CAD/CAM) 등이 생겼다.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를 응용한 학문이 그때 시작된 것이다. 우리 이전에 졸업한 선배들은 컴퓨터 없이 공부했다. 우리가 컴퓨터 1세대이자 로봇산업 1세대다.”

-유진로봇 회사 이름에 담긴 뜻은.

“1989년 아버님이 경영하던 자동차부품회사 ‘유진전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유진(悠進·유구할 유, 나아갈 진)의 뜻이 좋았다. 유진(友人·ゆうじん)은 일본어로 친구라는 뜻도 있다. 발음이 똑같다. 요즘은 일본과 사업을 별로 안하지만 사업초기에는 좀 했었다.“

-유진과 함께 로봇산업 1세대로 꼽을 수 있는 기업은.

“로봇산업을 함께 시작한 마이크로로봇 이지로봇은 없어졌다. 하늘아이, 한울로보틱스는 아직도 남아 있다.”

◈대기업도 줄줄이 포기했던 로봇사업

-로봇업체들이 왜 없어졌나. 수요가 줄어든 탓인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져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을 때 국내 산업용로봇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로봇에 대한 수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우중공업 LG산전 등 대기업들도 로봇사업에서 철수했다. 기아기공 삼성전자 삼성중공업도 로봇사업을 했다가 모두 외환위기때 손을 뗐다. 내가 일했던 삼성항공도 로봇사업 착수 10년만에 로봇자동화사업부를 스핀오프시켰다.”

-로봇사업 27년동안 힘들었던 시기는.

“크게 세차례 있었다. 사업초기에 힘들었고, 외환위기 때 재정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2005~2006년엔 산업용이 아닌 서비스로봇을 개발하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사업적으로 확 커지지 않아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로봇업체로서 국가적인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데 매출 성장으로 결과를 빨리 못내서 큰 부담을 갖고 있다. 로봇 수요가 생각보다 빨리 늘지 않는다.”

-해외시장에서도 수요가 더디게 느는가.

“해외에는 수요측면에서 다급한 나라가 많이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적어 노인용 교육용 로봇 수요가 많다. 중국은 인더스트리 관련 로봇 수요가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다. 드론 같은 산업이 활발하게 크고 있다. 한국을 위협할 수준이다. 한국은 로봇을 산업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로봇에 대한 수요가 다급한 나라로 보이지 않는다. 로봇산업이 발달하려면 각 분야의 수요를 촉발시켜야 한다.”
[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⑤] 신경철 유진로봇 대표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이념 로봇으로 실현할 것"
◈복지 농업 건설 국방 등에서 로봇 역할 많이 할 것

-무엇이 수요 촉발의 계기가 될까.

“노인용과 아동용으로 사회적인 복지와 관련해서 로봇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노인 복지의 경우 로봇을 활용하면 비용을 상당히 절감시킬 수도 있다. 국내에서 수요가 있는 기술을 잘 발달시키면 수출도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복지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10년 뒤쯤이면 로봇이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다. 우선 농업이나 건설 분야에서 사람들의 일손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국방에서도 군인들의 역할을 로봇이 해줄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선 이미 로봇을 활용하고 있고, 그 외에도 가사나 노약자 유아들 도와주는 역할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자리를 뺏어가면 그렇다. 하지만 로봇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건설 농업 국방 등의 3D 직종이 대표적이다. 괜히 하기 싫어하는 데 젊은 사람들을 강제로 투입하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그런 일을 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로봇을 만든다든지, 개발 생산 서비스를 한다든지, 바이오 분야 연구를 한다든지 등등…”

-사물인터넷(IoT)으로 로봇시장이 획기적으로 커질 가능성은.

“IoT는 2~3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로봇에서 지능문제를 해결하는 게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다. 로봇이 호스트 컴퓨터의 지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로봇이 다른 시스템과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러가지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홈오토메이션 휴대폰 연결 등을 통해 로봇 자체가 얻을려면 힘든 정보를 IoT기술로 가져올 수 있다. 가령 멀리 있는 노인의 건강 상태를 그냥 파악하기 힘들지만 IoT를 이용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휴대폰 등 모바일에 접속해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IoT의 로봇 활용도는 매우 높아질 것이다.”

-멘토나 롤모델이 있다면.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롤모델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다. 삼성항공에 입사했을 때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라는 이 회장의 경영이념 가운데 사업보국이란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그 때부터 로봇사업으로 사업보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 밀레에 ODM 수출 가장 뿌듯

-보람찬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여러번 있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서 해외기업에 수출하는 게 가장 뿌듯했다. 우리가 청소로봇을 만들어 해외수출할 때그렇다. 지난해 1월부터 독일 최대 가전회사인 밀레에 청소로봇을 제조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납품하기로 시작했다. 밀레는 1899년 설립된 세계적인 명품 가전회사다. 116년된 영속기업이다. 그런 회사가 우리 것을 자기네 제품으로 채택한 것이다. 밀레에서 ODM으로 만드는 제품이 없다고 한다. 우리 제품의 기술력을 믿고 납품받아 껍데기만 조금 달리해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옛날에 모토로라와 필립스에 설비를 납품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 보람이 있었다. 국내에 파는 것 보다 외국 수출이 더 보람이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시장에도 유통업체 타미를 통해 지난 3월부터 청소로봇을 시범수출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대만 싱가포르에도 로봇을 수출하고 있다.”

-유진로봇의 사무실 공장 물류창고 등이 많은데.

“서울 가산동 디지털단지 본사와 연구소 지점 공장, 경기도 부천 공장 3곳과 용인 물류창고 등 총 8곳이 있다. 수출이 늘다보니 공장과 물류창고 등이 더 필요했다.”

-앞으로 목표는.

“1990년 5월 창업한 이후 25년이 지났다. 앞으로 목표는 당분간 코스닥협회장 업무와 유진로봇의 사업에 충실하면서 로봇산업을 키우는 데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 한국의 로봇 기술력은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보다 ‘로봇을 활용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잘하는 나라들이 많다. 한국은 기술개발에만 치중하고 있는데 그것을 잘 응용하는 나라들이 산업발전 속도가 빠른 것 같다.
중국이 그렇다. 로봇산업 시장을 굉장히 빨리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면 한국은 가망성이 없다. 한국이 아직까지 기술력은 앞서지만 중국이 굉장히 적극적이다. 세계적인 행사도 유치하고 있다. 중국 특유의 자본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몇년 뒤를 알 수 없다.”

-한국로봇산업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데.

“지능로봇산업협회 초대 회장(2003~2005)과 로봇산업연구조합 이사장(2001~2008)을 지낸 적이 있다. 2008년 로봇관련 단체들이 한국로봇산업협회로 통합되면서 대기업 사장이 회장을 하고 내가 부회장을 맡았다. 이용훈 현대로템 대표,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서유열 KT 사장이 1~3대 회장을 지냈고, 김철교 삼성테크윈 사장이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 출신 회장들이 임기중에만 로봇일을 하게되니까 장단점이 있다. 부회장이지만 오너 기업인으로서 로봇산업 키우기에 대한 의욕과 책임감이 대기업 출신 회장보다 앞설 수 밖에 없다.”

신경철 대표는 모태신앙인이다. 장로님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게 그의 좌우명. 청년시절에는 농어촌 선교활동을 많이 했다. 지난해까지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사장(현재 고문)을 지냈다. 주말엔 북한산 주변 등산과 골프를 즐긴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철에다 신경 세포와 조직을 심는 사람이 바로 신경철 (코스닥협회) 회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신경을 심는 철’이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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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명수 한경닷컴 뉴스국 부국장 max@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