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5일 오후 4시55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삼성물산 정관 변경을 요구했다. 이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엘리엇 측이 어떤 경로로 삼성을 압박해 나갈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상 삼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지만, 주가 상승에는 휘발성이 강한 ‘주주제안’을 앞세워 동조세력을 규합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단독/베일 벗는 엘리엇 속셈] 삼성전자 지분 내놓으라는 요구 앞세워 삼성물산 주가 상승 노린다
“계열사 주식 배당으로 달라”

삼성물산은 계열사 15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사는 삼성전자(지분율 4.1%), 제일모직(1.4%), 삼성SDS(22.6%), 제일기획(12.6%) 등 9개사, 비상장사는 삼성라이온즈(7.5%) 등 6개사다. 5일 기준으로 삼성전자 지분가치만 해도 8조986억원, 시세가 확인되는 상장계열사 지분을 다 합치면 13조7901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의 시가총액(11조8882억)을 웃도는 규모다.

투자은행(IB)업계는 엘리엇이 이 같은 보유지분 가치와 시가총액 간 격차를 앞세워 현재 삼성 경영진이 주주가치 보호에 미온적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전략을 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물배당은 어림도 없다는 게 삼성 측 반응이다. 그룹 핵심이자 지배구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와 삼성SDS 지분을 흩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사모펀드(PEF) LK투자파트너스의 강성부 대표는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배당으로 내놓을 경우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목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주가치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엘리엇 측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삼성물산 외에도 보유 자산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은 많다”며 “단순히 삼성물산의 주식운용이 잘못돼 주가가 낮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법적 소송도 불사할 듯

엘리엇의 주주제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안건을 처리하는 오는 7월17일 임시주주총회에 상정된다 하더라도 주총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관 변경은 출석주주의 3분의 2, 전체 주주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현재 7.12% 지분을 들고 있는 엘리엇이 추가로 26% 이상 지분의 주주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법조계는 다만 삼성물산이 엘리엇의 주주제안을 주총 안건에 누락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상법상 회사가 주주제안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제안 내용이 위법하거나 거짓되고,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에 해당해야 한다.

삼성물산이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을 경우 엘리엇은 그동안의 방식대로 의안상정 가처분 등 법적 소송도 불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은 주총 통과를 위해 외국인 주주 등을 대상으로 세규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향후 삼성물산 주가상승 가능성을 내세워 ‘공동전선’을 구축하자는 저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엘리엇이 향후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오는 11일까지 매입한 주식에 대해서는 주총에서 의결권이 주어진다. 설사 주총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주가가 계속 오를 경우 엘리엇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삼성전자 주식을 노리고 현물배당을 요구한 것을 볼 때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압박수위를 더 높이다가 삼성그룹에 자신들의 지분을 고가에 매입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좌동욱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