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IB (1) M&A 호황에도 '역주행' 하는 국내업계

초대받지 못한 국내 증권사
KDB대우 511억이 최대 M&A…'빅3' 거래에 국내 증권사 배제
한국IB 전체실적, 도이치 못당해

M&A조직 축소·폐지 잇따라
커지는 시장 외국계가 독식해도 국내는 조직 해체·인력 이탈
"외국계 네트워크와 경쟁 안돼"
마켓인사이트 4월20일 오전 8시30분

국내 투자은행(IB)업계에서 인수합병(M&A) 자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해당 기업의 유상증자와 채권 발행 등의 거래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시장은 외국계 IB의 ‘잔치판’이다. 한국 IB의 지배력은 20% 미만이다. 실무 능력에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외국계가 오랜 기간 축적한 노하우와 네트워크 등이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IB는 점차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판은 커지는데 보따리를 싸는 곳이 늘고 있다. 이런 역주행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지, 국내 IB의 재무장 전략은 무엇인지 등을 총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KDB대우증권(8,790 -0.57%)은 지난해 12월 IB사업부에서 M&A 자문을 제공하는 어드바이저리본부를 해체하고 외국계 증권사에서 영입한 본부장(전무)을 내보냈다. 어드바이저리본부장 자리는 상무급이 맡는 M&A실장으로 대체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올 1월1일자로 M&A실장(상무)을 퇴사시키고 IB담당대표 직속이던 M&A실을 투자금융본부장(상무) 아래로 집어넣었다. M&A실장은 이사급이 맡게 됐다. 현대증권에서는 소병운 IB총괄부문장(전무)이 3월 말로 그만뒀다. 현대증권은 후임 부문장을 따로 뽑지 않고 본부장(상무)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속출하는 ‘백기투항’

주요 증권사가 잇따라 M&A 조직을 ‘격하’ 시킨 것을 두고 IB업계에선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외국계 증권사들과의 정면승부를 포기했다’란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장과 거꾸로 가는 것이다. 국내 M&A시장이 급격히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거래 규모는 약 72조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컸다. 2013년(38조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었다. 올해도 기업 지배구조 재편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으로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너스 대박’을 기대하며 M&A 부서가 눈코 뜰새 없이 바빠야 할 때다. 1조원짜리 딜을 성사시키면 통상 100억원 안팎의 ‘성공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관련 부서를 앞다퉈 줄이고 있는 것이 국내 증권사들의 최근 양상이다. “비싼 인건비를 들여 조직을 유지해봐야 외국계 증권사들을 당할 수 없다”(모 증권사 IB담당 임원)는 이유에서다.

◆‘삼성-한화 빅딜’도 JP모간으로

외국계와 겨뤄볼 만한 곳은 NH투자증권(9,120 -2.15%)삼성증권(30,900 -0.48%) 둘만 남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NH와 삼성증권을 제외하면 KDB대우 하나대투 현대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실제로 대형 M&A에서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KDB대우증권의 경우 2010년부터 공동 매각주관사인 JP모간, 삼성증권과 함께 작업한 경남은행 매각을 제외하면 지난해 독자적으로 성사시킨 가장 큰 M&A(바이아웃·발표기준)는 한솔제지의 네덜란드 텔론 인수였다. 거래 규모는 511억원이었다. 신한금융투자는 아이엠투자증권 매각(1710억원), 하나대투증권은 MDS테크놀로지 인수(750억원), 한국투자증권은 예성저축은행 인수(373억원)가 가장 큰 거래였다. 1년간 자문 실적은 두 건씩에 불과했다. 현대증권은 실적이 전무했다.

오비맥주(6조1712억원)와 한라비스테온공조(2조8180억원), ADT캡스(2조665억원) 등 지난해 M&A ‘빅3’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삼성그룹이 화학·방산 계열사 네 곳을 한꺼번에 한화그룹에 넘긴 ‘삼성-한화 빅딜’ 역시 JP모간에 돌아갔다.

◆삼성, 간신히 6위 ‘턱걸이’

이에 따라 외국계 증권사와 국내 증권사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M&A 자문실적 성적표인 리그테이블을 집계한 결과 전체 1위를 차지한 도이치증권의 자문실적은 5건에 총 10조776억원이었다. 모건스탠리(8조4790억원)와 라자드(7조3562억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6조6781억원), JP모간(3조5419억원) 등 1~5위를 독식한 외국계 증권사들의 실적은 10조원을 넘나들었다.

반면 국내 증권사 가운데는 삼성증권(6위·3조2337억원)만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신한금융투자(22위)와 하나대투증권(24위), 한국투자증권(27위) 등 나머지 국내 대형사들은 20위권 밖이었다. 이들 증권사의 자문실적은 각각 1000억원 안팎으로 도이치증권의 10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들의 전체 자문실적을 합해도 7조1331억원으로 도이치증권 한 곳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근 증권시장이 장기 박스권을 탈출하며 완연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 IB의 봄’은 요원하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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