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주식 증여한 천일고속, 미워도 사는 이유
천일고속 창업주가 명의신탁했던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해 손자들에게 증여한 뒤 이 회사 주가가 2거래일 연속 강세를 보였다. 상장 후 38년간 대규모 지분(68.77%)을 숨겨놓은 최대주주 일가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원성은 높았다. 그럼에도 증여세를 내기 위해 고액 배당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천일고속은 창업주인 박남수 명예회장이 명의신탁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 98만2944주를 실명 전환해 손자인 박도현 사장(37.13%)과 박주현 부사장(31.76%)에게 전량 증여한다고 공시한 지난 9일 이후 이틀간 10.38% 상승했다. 갑자기 실체를 드러낸 명의신탁 주식 때문에 20%대이던 천일고속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단숨에 85.87%로 급증했다. 이후 평소 하루 1000주에도 못 미치던 거래량은 2만주를 웃돌았다.

명의신탁 주식의 실명 전환 이후 천일고속에 매수가 몰린 것은 최근 4년간 없었던 배당에 대한 기대 때문이란 분석이다.

창업주의 손자인 박 사장과 박 부사장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는 4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30억원이 넘는 증여재산에 대해서는 세율 50%가 적용되고, 자녀가 아닌 손자·손녀에 대한 증여 땐 여기에 30%가 할증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올린 영업이익(26억원)의 15배가 넘는 규모다.

증여세를 내기 위해 고액 배당에 나설 것이란 예상과 함께 서울버스터미널 보유 지분(16.67%) 등 자산주로서의 가치도 재조명됐다. 증권사 관계자는 “최대주주의 보유 지분이 크게 늘고 승계 작업까지 마무리돼 경영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도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