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이 돌아왔다] 눈 밝아진 '스마트 엔젤'…100여 투자클럽 '될성부른 벤처'에 베팅
변호사·회계사에 40~50대 직장인 등 가세
고위험 장기투자 '忍耐 비즈니스' 감안해야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엔젤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묻지마형(型)’이 2000년대 초 상당수 엔젤투자자의 민낯이었다면 요즘엔 투자 지식과 회계 노하우, 창업 경험까지 두루 갖춘 ‘스마트형’이 대세”라고 은행원 출신의 엔젤투자자인 곽경철 씨(38)는 말했다.
◆‘진화’하는 엔젤
우선 생태계가 튼튼해졌다. 엔젤투자에 관심이 있는 아마추어 투자자부터 주식투자 전문가,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 이르기까지 클럽 활동자들이 다양해졌다. 최근엔 10억원대 안팎의 은퇴자금을 쥐고 있는 40~50대 중년 직장인들이나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은퇴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엔젤협동조합인 엔슬(ENSL)의 안창주 이사는 “정보를 입수하거나 투자 결정에 필요한 판단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정교하게 갖춰져 있다 보니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클럽이나 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투자할 경우 수백만원으로도 엔젤이 될 수 있는 만큼 단체로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강달철 브라더스 엔젤클럽 총무는 “회원 중에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임원 출신이 10여명 정도 있다”며 “개인 엔젤 혼자서는 하기 힘들었던 투심(투자 결정을 위한 사전심사)이나 투어(현장실사)를 갈 때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엔젤들의 활동은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PEF) 투자팀을 방불케 할 정도다. 투자할 후보 기업을 클럽으로 불러 기업설명회(IR) 행사를 하는가 하면, 해당 기업을 두세 달씩 실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디지털단지의 한 LED(발광다이오드) 개발 업체 관계자는 “7명의 전 직원 면접을 다섯 번이나 한 후에도 특허권과 재무제표, 심지어 해외 영업담당의 어학실력까지 꼼꼼히 체크해 놀랐다”고 말했다.
◆인내 필요한 ‘장기 투자’
엔젤투자는 창립 초기 벤처들이 가장 많이 폐업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구간에 주로 이뤄진다. 우량 벤처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브리지 캐피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긴 시간과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얘기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경험만 있는 일반인이 엔젤클럽 등을 찾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투자 결과를 확인하는 데에만 최소 3~6년이 걸린다. 기업이 본격적으로 실적을 내고 성장한 뒤, 시장(코스닥, M&A 등)에서 지분을 매매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운이 좋으면 이 기간에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 PEF 등 대형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팔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확률은 10%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젤투자를 인내(忍耐)비즈니스(patience business)로 부르는 배경이다.
엔젤투자자 중 대다수가 벤처 창업 경험이 있거나, 전직 기술직 연구원, 마케팅과 영업네트워크를 운용해 본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보컴퓨터 임원 출신인 한 엔젤투자자는 “엔젤투자에도 주식의 포트폴리오 전략은 똑같이 적용된다”며 “예비 엔젤들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는 자금을 조금씩 투자해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관우/오동혁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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