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지수가 16일 장중 613.72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대형 코스닥지수 전광판 앞을 거래소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코스닥지수가 16일 장중 613.72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대형 코스닥지수 전광판 앞을 거래소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벤처투자 열풍이 들불처럼 번졌던 2000년대 초. 대박을 꿈꾸고 비상장 벤처에 쌈짓돈을 밀어 넣었던 이들 중 상당수는 땅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부는 운좋게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투자자들은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투자지분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엔젤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묻지마형(型)’이 2000년대 초 상당수 엔젤투자자의 민낯이었다면 요즘엔 투자 지식과 회계 노하우, 창업 경험까지 두루 갖춘 ‘스마트형’이 대세”라고 은행원 출신의 엔젤투자자인 곽경철 씨(38)는 말했다.

◆‘진화’하는 엔젤

[엔젤이 돌아왔다] 눈 밝아진 '스마트 엔젤'…100여 투자클럽 '될성부른 벤처'에 베팅
우선 생태계가 튼튼해졌다. 엔젤투자에 관심이 있는 아마추어 투자자부터 주식투자 전문가,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 이르기까지 클럽 활동자들이 다양해졌다. 최근엔 10억원대 안팎의 은퇴자금을 쥐고 있는 40~50대 중년 직장인들이나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은퇴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엔젤협동조합인 엔슬(ENSL)의 안창주 이사는 “정보를 입수하거나 투자 결정에 필요한 판단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정교하게 갖춰져 있다 보니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클럽이나 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투자할 경우 수백만원으로도 엔젤이 될 수 있는 만큼 단체로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강달철 브라더스 엔젤클럽 총무는 “회원 중에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임원 출신이 10여명 정도 있다”며 “개인 엔젤 혼자서는 하기 힘들었던 투심(투자 결정을 위한 사전심사)이나 투어(현장실사)를 갈 때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엔젤들의 활동은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PEF) 투자팀을 방불케 할 정도다. 투자할 후보 기업을 클럽으로 불러 기업설명회(IR) 행사를 하는가 하면, 해당 기업을 두세 달씩 실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디지털단지의 한 LED(발광다이오드) 개발 업체 관계자는 “7명의 전 직원 면접을 다섯 번이나 한 후에도 특허권과 재무제표, 심지어 해외 영업담당의 어학실력까지 꼼꼼히 체크해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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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필요한 ‘장기 투자’

엔젤투자는 창립 초기 벤처들이 가장 많이 폐업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구간에 주로 이뤄진다. 우량 벤처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브리지 캐피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긴 시간과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얘기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경험만 있는 일반인이 엔젤클럽 등을 찾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투자 결과를 확인하는 데에만 최소 3~6년이 걸린다. 기업이 본격적으로 실적을 내고 성장한 뒤, 시장(코스닥, M&A 등)에서 지분을 매매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운이 좋으면 이 기간에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 PEF 등 대형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팔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확률은 10%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젤투자를 인내(忍耐)비즈니스(patience business)로 부르는 배경이다.

엔젤투자자 중 대다수가 벤처 창업 경험이 있거나, 전직 기술직 연구원, 마케팅과 영업네트워크를 운용해 본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보컴퓨터 임원 출신인 한 엔젤투자자는 “엔젤투자에도 주식의 포트폴리오 전략은 똑같이 적용된다”며 “예비 엔젤들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는 자금을 조금씩 투자해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관우/오동혁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