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오는 14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엔저 흐름이 주춤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국의 강한 경기회복세로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데다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힘을 받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엔저가 가속화하고 있다.

○3개월여 만에 달러당 16엔 급락

"엔貨 내년말 달러당 130엔까지 추락"…통제불능 사태 우려도
엔화가치는 지난 9월부터 가파르게 떨어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예정대로 그 다음달 양적 완화를 종료하겠다는 것을 내비친 시점이다. 10월 Fed가 양적 완화 종료를 선언한 반면 일본은행은 오히려 시중 자금공급량을 80조엔으로 확대하는 추가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미·일 간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면서 양국 간 금리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지난달 아베 총리가 소비세 추가 인상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강등하자 엔화 가치는 더욱 미끄러졌다. 올 들어 10월까지 사상 최대로 불어난 무역적자(11조엔)도 엔화 약세 요인이 되고 있다. 9월 이후 엔화는 달러당 16엔(15.2%) 넘게 떨어졌다.

일본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엔화 급락을 경계하는 발언이 간간이 나오긴 했지만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환율은 경제와 금융의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지만 그후 ‘숨고르기’ 성격의 반등만 있었을 뿐 곧바로 엔화는 약세로 기울었다.

○“속도의 문제일 뿐 방향은 하락”

엔화 가치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떨어지자 JP모간 모건스탠리 씨티 도이치뱅크 노무라 등 5개 투자은행은 지난 1주일 새 일제히 엔화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다나카 다이스케 도이치증권 수석환율전략가는 “경제 기초 여건에 비춰볼 때 엔화 약세 기조는 내년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엔화 가치가 내년 상반기 달러당 125엔, 내년 말 130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미즈호은행, SMBC프렌드증권 등도 130엔 선을 예상하고 있다.

수출부문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이나 유럽 등은 엔저를 유도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쟁국들의 반발뿐 아니라 엔화 가치가 120엔에서 더 큰 폭으로 떨어질 경우 엔저의 긍정적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어느 수준에서 제동을 걸지도 시장의 관심이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