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 품질에 따라 회계법인에 등급을 매기는 방안이 추진된다. 기업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회계 부정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회계감독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개선하려는 목적에서다.

4일 금융감독 당국과 김기식 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회계분식 개연성이 높은 기업으로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김기식 의원 발의)이 국회에 상정된 데 발맞춰 금융감독 당국이 회계법인 등급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는 “감사인을 지정해야 할 경우 지금은 자산 규모가 큰 기업에 회계사 수 등 외형이 큰 회계법인을 매치시키고 있다”며 “회계부정 가능성을 줄이려는 법 개정 취지를 살리려면 감사 품질이 뛰어난 회계법인이 대기업을 감사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등급 매긴다…감독당국 시스템 개선 추진
현재 금융감독원은 회계법인을 회계사 수, 설립 연한, 국제적 제휴관계 등 외형적 요건으로 평가해 감사인 점수를 매기고, 이 결과를 토대로 회계법인을 1~4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감사인을 지정할 때 1그룹에 속한 회계법인을 규모가 큰 기업에 배정하고, 감사인 지정 건수도 많이 할당한다. 이를 감사품질 등 정성적인 요소를 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꿔 A,B,C 등급으로 나누고 상위 등급을 받은 회계법인에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00~2009년 회계법인별 감사인 지정 현황에 따르면 삼일 20.7%, 안진 12.1%, 삼정 9.6%, 한영 9.0% 등 4대 회계법인이 감사인 지정 건수의 과반을 점하고 있다. 지정 건수 상위 7개사를 제외한 74개 회계법인은 해당 기간에 평균 7.4개 기업 감사를 지정받았다.

감사인 지정제란 감리조치, 관리종목, 투자유의 종목, 소유·경영 미분리, 부채비율 등 사유가 있는 기업의 감사인을 증권선물위원회가 강제 지정하는 제도다. 김 의원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거나 부채 비율이 일정 정도 이상에 달하는 등 회계분식 개연성이 있는 회사로 감사인 지정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작년 11월 발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1.7% 수준인 감사인 지정 기업 비중이 10%대로 높아질 전망”이라며 “지정 감사인 수요가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회계법인 등급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과거 감사인 등록제를 추진하며 감사품질 등급을 매기려 했으나 회계업계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번에는 감사인 지정제에 국한해 등급을 매긴다는 구상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