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하락세는 작년보다 둔화

원·엔 환율이 2013년 서울 외환시장 폐장일인 30일 100엔당 1,000원 선을 하향돌파했다.

올해는 일본의 통화정책 완화 효과로 엔·달러 환율이 105엔을 넘어서는 등 엔저(円低·엔화가치 하락) 현상이 두드러지며 원·엔 환율도 세자릿수에 진입했다.

이에 비해 지난해 가파르게 하락했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등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나타내며 하락폭이 완만해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 약세가 이어져 내년 원·엔 환율이 세자릿수를 지킬 것으로 내다봤다.

◇원·엔 환율 1년새 230원↓…내년에도 하락세 계속
30일 원·엔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 개장 전 100엔당 1,000원 선이 붕괴된 뒤 오전 9시 외환시장 개장 직후 999.62원까지 하락했다.

원·엔 환율 1,000원 선이 무너진 것은 2008년 9월 9일(장중 저가 996.68원) 이후 5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2008년 10월 이미 1,500원 선을 넘어선 원·엔 환율은 계속 1,200∼1,600원 선에서 움직이다 지난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 외환시장 개장일인 1월 2일 장중 한때 100엔당 1,503.19원을 기록한 원·엔 환율은 올해 1월 2일 1,230원대로 내려서더니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1,000원 선을 내줬다.

2년 사이 3분의 2토막이 난 셈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원화 강세가 환율 하락을 주도했다면 올해는 엔화 약세가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

실제로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76엔 선에서 86엔 선으로 올라섰지만 올해는 86엔 선에서 이날 105엔선까지 숨가쁘게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 1,050원 선 사수
이에 비해 지난해 가파르게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마지막 거래를 1,055.4원에 마치며 1,050원 선을 지켜냈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1월 2일 1,066.0원에 개장한 뒤 한동안 1,060∼1,080원 선을 오가다가 3월 들어 미국 경제지표 호조에 따른 양적완화 축소 우려와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로 1,100원 선을 상향돌파했다.

특히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5월 "여건에 따라 자산 매입 속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언급하자 일명 '버냉키 쇼크'에 시달린 원·달러 환율은 하루 사이 (5월 23일) 14.7원 급등하기도 했다.

1,100원을 중심으로 한 원·달러 환율의 박스권 등락은 거의 6개월간 계속되다 9월부터 다시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준은 시장의 예상을 깨고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하지 않았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 비해 경제 기초여건과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된 것으로 평가받은 한국은 오히려 외국인 자금 유입에 가속도가 붙었고 원·달러 환율도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12월 중순 연준이 테이퍼링 실시 계획을 발표했지만 테이퍼링 규모가 예상과 맞아떨어진데다 테이퍼링 우려가 시장에 이미 반영돼 있어 한국 외환시장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내년에도 원·엔 환율 하락세 지속 전망
문제는 원·엔 환율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원화 강세 기조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2014년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원화 가치의 급등락 가능성을 지적했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에서 자본이 유출되면 원화 가치는 약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는 강력하고 빠른 출구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한국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평가가 좋아 오히려 원화 절상(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일본이 내년 안에 출구전략을 고려할 만큼 경기가 반등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와 엔화 약세는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일본이 내년 소비세 인하를 앞두고 지금보다 양적완화를 더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중 내년 말에는 달러당 110엔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곳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원·엔 환율 추가 하락세가 현실화한다면 한국 기업들이 수출 시장에서 악영향을 받는 등 한국 경제의 활력 제고에 빨간 불이 켜질 것으로 보인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일본과 수출 주력업종이 많이 겹치기 때문에 엔화 약세는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영업이익 등에서 악영향을 받으면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는 등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김승욱 기자 cindy@yna.co.krksw0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