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규모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매달 850억달러의 국채와 모기지증권 매입을 내년 1월부터 100억달러 줄인다는 방침이다. 마침내 출구전략이 시작되는 셈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테이퍼링 시대 최대 피해…'한국 이종통화 환율'
지금까지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약 3조2000억달러(약 3300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증시를 비롯한 각 분야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Fed 회의가 끝난 이후 며칠간 움직임을 보고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한국의 두 경제정책 수장의 판단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구전략의 첫 단추가 테이퍼링인 만큼 미국의 시장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 5월 말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출구전략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이후 미국의 시장금리는 일제히 올랐다. 예측기관들은 기준금리를 올리기 이전이라도 출구전략만 시작되면 대표금리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명목성장률 수준(현재 4% 내외)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자금흐름이 각국 간 금리차에 의한 캐리(carry) 자금의 성격이 짙은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강세가 예상된다. 출구전략이 처음 언급된 이후 신흥국 환율은 급등했다. 출구전략 추진만으로는 원·달러 환율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경상수지 흑자 등 하락요인도 만만치 않아 그 폭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달러화를 제외한 이종통화 환율은 사정이 다르다. Fed가 테이퍼링을 발표한 시점에서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추가 양적완화 계획을 밝혀 엔화, 유로화에 대한 원화값은 의외로 크게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과 일본 간 시장금리차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상반기가 우려된다.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그렇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지표로 신흥국의 위기 가능성을 점검하면 외환보유액이 적고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심한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필리핀, 태국 등이 ‘고(高)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된다. 반면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히 쌓아놓고 있는 한국, 중국, 대만 등은 ‘저(低)위기 위험국’이다.

남은 신흥국들은 ‘중(中)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된다. 외환보유액은 적정 수준 이상 쌓아놓고 있지만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중남미, 중동, 선발 동남아 국가들이 해당된다. 재정환율 성격상 분자인 원·달러 환율보다 분모인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환율이 더 오른다면 원화값은 절상된다.

신흥국과 원자재 시장 간 글로벌 자금의 유출입 상관관계를 추정해 보면 0.8(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나온다.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한다면 원자재 시장에서도 자금 이탈이 예상돼 원자재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테이퍼링 계획이 발표된 이후 국제 금값이 곧바로 온스당 1200달러 선 밑으로 무너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실적 장세론과 거품 붕괴론. 내년 1월부터 테이퍼링에 들어갈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 앞날을 놓고 치열하게 전개될 증시논쟁이다. 그만큼 양적완화 추진 과정에서 글로벌 증시가 호조를 보인 것은 돈의 힘이 컸던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미국 주가만 하더라도 1년 전부터 거품 우려가 제기돼 왔다.

테이퍼링 시대에 돈의 힘에 의해 오른 주가가 계속 상승하기 위해서는 ‘부(富)의 효과’에 의해 경기여건이 개선돼야 가능하다. 이것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테이퍼링이 촉매가 돼 거품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부의 효과’란 자산가격이 오르면 경기가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들은 종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디레버리지(부채축소)에 치중했다. 이것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디레버리지가 마무리되면서 한때 8%에 육박하던 저축률이 위기 이전 수준인 4%대로 복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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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논쟁은 ‘회복(소프트 패치 또는 라지 패치)’이냐 ‘침체(더블 딥 또는 트리플 딥)’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경기논쟁은 회복은 기정사실화하고 그 속도에 있어 빠른 ‘V’자형과 늦은 ‘U’자형, 그 중간 수준의 ‘나이키 커브론’ 간의 입장차다.

준(準)선진국 위치에 있는 한국은 신흥국과 다른 통로로 영향을 미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테이퍼링으로 선진국의 장점인 금융시장 안정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신흥국 자금이탈에 따른 영향이 집중돼 달러 이외 이종통화 환율은 크게 불리해진다. 특히 가장 불리하게 움직일 내년 상반기 이종통화 환율 변동에 미리 대비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