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하는 엔화 > 100엔당 원화 환율이 1027원까지 떨어진 3일 우리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바꿔줄 엔화를 세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추락하는 엔화 > 100엔당 원화 환율이 1027원까지 떨어진 3일 우리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바꿔줄 엔화를 세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엔저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따른 피해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자동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엔저를 등에 업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마케팅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장기적으로 일본 차의 국내 시장 잠식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미시장 판매 정체 및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엔저에 현대차 ‘비상’

[엔저 태풍] TPP·엔저로 '일본車 대공습' 경보…한국 車산업 초비상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엔저 추세가 심해지면서 원·엔 환율이 4원72전 하락한 100엔당 1027원70전을 기록했다. 2008년 9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엔저 공세’가 가속화되면서 현대·기아차에는 비상이 걸렸다.

임탁욱 현대차 해외영업본부장 (부사장)은 “내년에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엔저”라며 “일본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나서는 만큼 경영전략을 보수적으로 잡고 내실을 다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내년도 사업계획 기준 원·달러 환율을 1050원으로 잡은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실제로 북미시장에서 도요타는 지난해 전년 대비 44만대(26.8%) 늘어난 208만대 판매한 데 이어 올해는 220만대 판매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26만대를 판매한 현대·기아차는 올해 1~10월 누적 판매량이 105만대에 그쳐 연말까지 130만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엔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일본 업체들이 북미시장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며 “엔저 기조가 이어질 경우 이 같은 현상이 유럽과 중국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현대·기아차의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차 국내 시장 잠식 우려”

엔저에 이어 TPP가 국내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체제인 TPP에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무관세 혜택을 누리게 되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TPP 참여하면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차의 관세(8%)가 폐지된다. 그만큼 국내 시장에서 일본 차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현재 일본 3사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중형 세단 등은 대부분 미국 생산 제품이라 이미 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건 도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다. 렉서스는 전체의 96%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까닭에 관세 폐지 효과를 직접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의 주력 차종인 ES300h(4990만원)는 관세 폐지 시 400만원의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한다.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 3.3모던’(4660만원)보다 100만원가량 더 싼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 팀장은 “이와 함께 일본 3사가 강점을 가진 소형차 경차의 가격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국내에 출시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면 중대형 자동차에 이어 소형차 시장에서도 일본차의 판매량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이미 자동차 시장을 개방해 관세가 없는 만큼 TPP로 인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추가로 얻는 혜택은 없다. 오히려 일본 업체들의 소형차 수입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현대차 엑센트와 기아차 모닝 등 국산 경·소형차와의 가격 격차를 고려해 자사의 소형차 수입을 미뤄왔다.

국내 한 일본 자동차회사 고위 관계자는 “관세가 철폐된다면 혼다 비츠와 닛산 마치 등 일본 소형차들이 국산차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소형차 경차는 중형차보다 마진이 작은 차종이라 일본 업체들의 실적 개선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국내 차 메이커에 경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