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생상품 '아찔한 추락'] "파생 투자자 보호하되 시장 자체를 죽여선 안돼"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오르페우스는 ‘노래(규제)’를 무기로 지옥의 ‘야수(위험시장)’를 잠들게 했다. 야수가 너무 오래 잠들면 지옥이 기능을 잃고, 당장 야수가 깨어나면 오르페우스가 죽는다.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적절한 수위조절이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를 다루는 데 핵심이란 점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비슷한 요구가 한국 파생상품시장에도 제기되고 있다. 한때 거래량 세계 1위였던 한국 파생상품시장은 2년 만에 10위로 떨어질 정도로 크게 위축됐다. 지나친 위축을 막아야 한다며 규제완화와 활발한 신규 상품 출시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선 “고위험 파생시장의 투기판화를 막아야 한다”는 시각도 여전히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실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파악한 뒤 적절하고 균형잡힌 수준에서 시장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문제” vs “투자자 보호 우선”

2011년 코스피200옵션 계약 단위가 5배 높아진 옵션승수 인상 조치 이후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파생시장 규제 강화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시각차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파생시장은 세계 파생시장을 주도할 좋은 토양을 지녔었는데 규제 강화 이후 급속도로 시장이 와해됐다”며 “기존 시장에 일부 문제는 있었지만 조그만 규제 움직임도 시장거래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조그만 규제에도 시장 자체가 죽어버릴 정도로 민감도가 큰 것이 파생시장인데 그 같은 특성을 간과했다는 설명이다.

오세경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외국에서 규제가 생기니까 무작정 규제가 도입된 측면이 있다”며 “막 상품이 개발돼 시장을 성장시키기도 전에 강한 규제를 받게됐다”고 거들었다.

반면 최준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0년 옵션쇼크, 최근 동양사태의 교훈은 투자자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파생시장에 대한 규제 도입으로 개인의 피해를 미리 방지했고 시장도 크게 건전화됐다”고 반박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파생시장은 개인들이 거래를 주도했는데 현실적으로 현물시장과 보완관계를 이루기보다는 투기적 요인으로 움직였다”며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규제를 가한 현 정책은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측 가능한 규제·다양한 상품이 활로

파생상품 전문가들은 위축된 파생상품시장의 활력을 되찾을 방법으로 △예측 가능하면서 일관된 규제정책 △시장 상황에 맞는 규제수위 조절 △다양한 파생상품 개발 △자유로운 상품의 출시와 퇴출 등을 꼽았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규제의 일관성과 예측성을 고려한 정책집행이 필요하다”며 “규제 효과를 검증해 부작용이 심하거나 규제 목적이 충분히 달성된 경우엔 규제 수준을 낮추거나 변경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환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방적으로 파생시장에서 개인을 배제하기 위해 거래단위 자체를 높이기보다는 거래단위는 작게 유지하되 총거래 포지션에 한도를 두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파생상품보다 레버리지가 평균적으로 더 높고 정보 접근이 어려운 해외 파생상품으로 투자자들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장원재 삼성증권 운용담당 상무는 “비전문가의 경우 해외 상품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거래할 수 있으므로 투자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사실상 금융위의 ‘허가제’로 돼 있는 신규상품 상장을 거래소와 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활성화해야 한다”며 “투기 성격보다 헤지 성격이 강한 다양한 상품을 갖춰야 해외시장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생시장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김재준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는 “파생시장은 위험관리기능, 가격발견기능, 현물거래 헤지(위험관리)기능 같은 다양한 순기능이 있다”며 “파생시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원은 “모든 파생상품은 위험한 것이 아니고 파생시장에서 개인들이 투자해선 안될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욱/윤희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