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생상품 '아찔한 추락'] 개인 투기 막으려다…기관·외국인 해외로 다 쫓아내
“증권사들이 외국인의 직접주문회선(DMA)을 통한 국내 파생상품 투자가 줄자 관련 부서를 홍콩으로 옮기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파생상품 투자를 전문으로 하던 국내 소규모 투자자문사들도 짐을 싸서 홍콩으로 가고 있습니다.”(A선물회사 영업담당 임원)

국내외 파생상품 투자자들의 ‘한국 파생시장 탈출’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대표 상품’인 코스피200선물·옵션의 거래가 급감한 데다 다양한 상품이 상장돼 있지 않아 투자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워서다.

◆투자비용 경쟁국보다 높아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선물의 10월 하루 평균 거래량은 15만1168계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200선물의 월별 하루 평균 거래량이 15만계약대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미국달러선물도 올해 상반기엔 전년 동기 대비 2.9% 줄어든 2810만계약이 거래되는 데 그쳐 글로벌 통화선물상품 거래량 순위가 6위에서 7위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파생상품시장의 위축은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거래비용 증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코스피200옵션 계약 단위 5배 인상(2012년 3월) △주식워런트증권(ELW)의 유동성 공급자(LP) 호가범위 제한 △우정사업본부에 차익거래 증권거래세 부과(2013년 1월) 등의 규제를 잇따라 내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월14일 기준으로 일본도쿄거래소의 닛케이225미니선물의 계약 단위는 1600만원, 유럽파생상품거래소의 유로스톡스50선물은 3900만원, 인도증권거래소의 ‘S&P CNX Nifty’선물은 2000만원인 반면 코스피200선물은 1억2000만원이다. 계약 단위에 증거금률을 곱하면 최초 투자금액이 결정되는데, 코스피200선물은 증거금률이 12%지만 일본 중국 미국 등의 거래소는 10% 미만이다. 최근 3년간 지수옵션의 거래 단위를 올린 국가도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기관·외국인, 국내 시장 떠나

문제는 규제 강화로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과 외국인들도 파생상품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차익거래 시장의 위축이 대표적이다. 프로그램차익거래(코스피200선물과 코스피200지수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무위험 수익을 추구하는 기계적인 매매기법)의 큰손이었던 우정사업본부가 증권거래세(0.3%)를 내게 된 후 시장을 떠나면서 코스피200선물시장이 위축됐다. 지난해 프로그램차익거래 시장의 약 58%(거래대금 기준)를 차지했던 우정사업본부의 올해 상반기 거래대금 비중은 2%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세금 부과 때문에 프로그램차익거래를 사실상 못하고 있다”며 “우정사업본부는 물론 매매 주문을 받아 수수료 수익을 얻던 증권사들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한국 파생상품시장을 떠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지난 1일까지 코스피200선물시장의 외국인 거래량(매수와 매도 합계)은 총 3591만9331계약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98만551계약) 대비 10.15% 줄었다.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 떠난 외국인들은 유동성이 풍부한 일본과 중국 지수선물시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올 상반기 중국 CSI300선물과 일본 닛케이225미니선물의 거래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119%, 114%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파생상품시장의 투자자 이탈을 막기 위해선 다양한 신상품 상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변동성지수선물이나 날씨선물 등 다양한 파생상품 상장을 추진 중이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위원은 “올해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은 단 한 개도 없다”며 “떠나간 투자자들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선 중위험·중수익 성격을 지닌 다양한 파생상품을 상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김동욱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