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주주인 한국거래소와 한국증권금융이 최악의 불황을 겪는 업계 사정에도 불구, 3조원에 육박하는 이익잉여금을 계속 쌓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에선 배당 확대 또는 자사주 매입 등으로 증권사들의 수익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사 도산 등으로 인한 증권시장 결제 불이행에 대비해 쌓는 적립금을 제외하더라도 잉여금이 과잉 축적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들 수익성 악화에 錢錢긍긍하는데…증권 유관기관, 돈만 쌓고 지원엔 담 쌓고
○임의적립금만 2조5000억원


3일 한국거래소와 증권금융에 따르면 양 기관의 이익잉여금(작년 회계연도 기준)은 총 2조6686억원에 이른다. 거래소가 1조7267억원, 증권금융이 9419억원을 쌓고 있다.

이 가운데 법정적립금(이익준비금)을 뺀 임의적립금과 미처분이익잉여금만 2조5076억원에 달한다. 이는 사업확장, 배당, 결제 등의 용도로 기관 판단에 따라 쌓는 돈이다. 양 기관의 임의적립금(미처분이익잉여금 포함)은 2010년 2조1037억원, 2011년 2조3616억원 등으로 계속 불어나고 있다. 거래소의 경우 작년 회계연도 미처분영업이익 1193억원을 이익준비금(31억원), 배당(318억원), 배당평균적립금(250억원)으로 각각 돌리고도 593억원이 남았다. 올해 임의적립금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얘기다.

○배당은 되레 절반으로 줄어

증권업계는 금융위기 등에 대비해 적립금을 쌓을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증권업계가 어려울 때 유관 기관들도 주주 배려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등에 거래소 시스템을 깔아주는 데 돈을 막 쓰면서도 생사기로에 선 주주인 증권사들은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힐난했다.

증권업계 불황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4~6월)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만 전체 62개사 중 21개사다. 대형 증권사인 KDB대우증권 순이익은 72억원, 우리투자증권은 19억원에 불과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거래소 지분이 평균 3%여서 작년 각사 배당수입이 10억원 정도였다”며 “배당 규모를 3000억원으로 늘리면 각사당 배당이 100억원으로 불어 증권사 경영난에 조금은 해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2011년 606억원을 지급한 배당금을 작년엔 318억원으로 되레 줄였다. 배당이 어렵다면 거래소와 증권금융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의 지분을 사주는 식으로 증권사 등의 현금흐름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고비용·저효율이 문제” 지적도

증권 유관 기관들도 할 말은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는 일종의 장치산업에 속한다”며 “새로운 시장 개설, 전산 투자,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잉여금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엔 1221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올해는 겨우 적자를 면할 전망”이라며 배당을 늘려주는 방안을 검토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증권금융은 잉여금으로 배당을 늘리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져 증권사들에 유통금융, 담보금융, 콜자금 등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해명했다.

업계에선 거래대금 증대를 가정해 500억원을 들여 구축한 ‘엑스추어플러스’가 거래 침체로 무용지물이 되는 등 거래소의 고비용·저효율 경영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성토했다. 결제 불이행에 대한 적립금도 이미 4000억원이 쌓여 있다고 지적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업의 성장성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주 입장인 증권사로서는 배당을 늘려달라고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를 뺀 국내 증권, 선물회사 33개의 거래소 지분은 작년 말 기준 79.22%다. 증권금융 지분도 증권사가 34.9%에 이른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