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금보장’에서 ‘위험감수’로 > 초저금리가 계속되자 투자성향이 보수적인 독일에서도 은행의 펀드 창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19일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에 있는 코메르츠방크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안상미 기자
< ‘원금보장’에서 ‘위험감수’로 > 초저금리가 계속되자 투자성향이 보수적인 독일에서도 은행의 펀드 창구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19일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에 있는 코메르츠방크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안상미 기자
‘국제 금융의 도시’로 불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인 크론베르크.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인과 은퇴자가 많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통한다. 이곳에 사는 안나 코리나 휴멜(52)은 지난 19일 현지 은행인 슈파르카세(Sparkasse) 타우누스 지점을 찾아 ‘블랙록자산배분펀드’에 가입했다. 그는 “그동안 보험, 연금 말고는 은행 예금에만 돈을 넣었는데 이자가 연 0.26%까지 떨어져 불만”이라며 “상담창구에서 연간 2%에 육박하는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을 낼 만한 투자상품을 추천받았다”고 말했다.

독일에선 가만히 있어도 자산가치가 저절로 줄어드는 ‘파이낸셜 리프레션(금융 불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시중금리가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져서다. ‘원금보장’에 재테크 시계가 맞춰져 있던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최소 물가상승률을 웃돌 만한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익 찾아라”

[글로벌 재테크 리포트] '예금금리+α' 독일인 사로잡은 글로벌 인컴·멀티에셋펀드
예금을 선호하던 독일 사람들은 지난 5년간 자국 내 회사채펀드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올 들어 이 펀드의 기대수익률이 연 5%를 밑돌자 글로벌 채권과 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글로벌 배당주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주식인컴형상품과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투자해 위험을 낮추는 멀티애셋(자산배분형)펀드가 최고 인기다. 글로벌 펀드평가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올해 독일에서 3억유로 이상 자금을 끌어모은 상위 14개 펀드 중에서 멀티애셋펀드가 절반을 넘는 8개였다.

독일자산관리산업협회(BVI)의 지난 5월 말 집계 결과도 비슷하다. 총 6958억유로의 공모펀드 중 주식형펀드 규모는 2561억유로로, 전체의 약 36%다. 이들 주식형펀드는 주로 글로벌 배당주에 투자한다는 게 현지 금융계의 설명이다. 뒤를 이어 채권형펀드가 1648억유로, 멀티애셋펀드가 1288억유로를 각각 차지했다.

페르디난드 하스 도이치애셋웰스매니지먼트 액티브투자 공동대표는 “유로존 위기를 경험한 데다 불확실한 투자환경이 지속되면서 손실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며 “금융투자상품 중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예금 금리보다는 수익이 좋은 상품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도이치애셋 측에 따르면 현금자산 2500만유로 이상의 초우량자산가(UHNW) 집단의 포트폴리오에서 고정수익이 나오는 채권 비중은 60~70%에 달한다. 여기에다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초과 수익을 얻기 위해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선진국 주식을 15~25% 담고, 나머지 5%가량을 부동산 및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상품에 투자한다.

하스 대표는 “지난 5년간 이들 자산가의 포트폴리오 성과를 점검해보니 주식 호황과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연 5~10%의 만족할 만한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중산층 투자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도이치애셋의 얘기다. 이 회사에서 올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글로벌주식인컴펀드’와 ‘중국회사채펀드’였다.

독일의 연평균 인플레이션은 현재 1.8% 안팎이다. 물가상승률이 시중금리를 웃돌다 보니 독일 사람들의 투자 목표는 자연스럽게 ‘물가상승률+α’가 됐다. 이에 따라 낮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과 높은 배당성향을 갖고 있는 주식 투자 비중을 조금씩 높여가는 중이다.

롤프 드리스 BVI 이사는 “회사채펀드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초저금리가 이어지면서 갈수록 기대수익을 낮추고 있다”며 “위험 관리가 가능한 글로벌 주식형 인컴상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독일 기관들도 “글로벌 투자가 답”

독일 기관들은 전통적으로 자사 운용자산에 우량 채권을 가장 많이 편입해 왔다. 투자등급 유로화 표시 채권의 비중이 평균 70~80%에 달한다. 현금 보유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요즘엔 1~2%라도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자산을 대이동시키고 있다. 채권과 현금 비중을 낮추는 대신 ‘위험자산군’에 속하는 글로벌 고배당주, 하이일드채권을 적극 사들이고 있다.

독일에서 34억유로의 기관 자금을 운용 중인 피델리티자산운용은 포트폴리오 내 주식 비중을 60%까지 높였다. 위험상품 비중이 더 커진 것이다. 유럽주식과 글로벌주식, 글로벌 인플레이션 연동채권 등을 주요 투자처로 삼고 있다.

한스-외르크 프란츠만 피델리티운용 기관판매부문 대표는 “독일 기관들은 그동안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우량 채권 투자로 큰 부담 없이 자산을 운용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요즘과 같이 낮은 금리 수준에선 국내외 주식이나 하이일드채권 등 고위험 자산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환율 리스크마저 떠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유로화 헤지(위험회피) 상품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선 보험, 연금 등 대형 기관들에 대한 투자 규제가 여전한 게 사실이다. 자산 및 부채관리시스템(ALM), 보험감독법(VAG)엔 기관의 주식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이 적지 않아서다. 그러나 고배당주에 대해선 예외 조항을 뒀다.

프란츠만 대표는 “고배당주만큼은 특별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각 기관들이 연간 2~3%포인트의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이쪽에 많이 투자한다”며 “고배당주가 많은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 등에 투자한 자산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특별취재팀=팀장 조재길 증권부 차장(호주), 안상미(독일)·황정수(일본)·조귀동(홍콩) 증권부 기자/유창재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