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거래소 차기 이사장에 관료 출신을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치금융’과 ‘모피아’(재무부 출신을 가리키는 말) 인사 독식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충분히 개연성 있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사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은 어느 정도 작용할까.

4년 전인 2009년 7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초대 사장을 뽑을 때도 그랬다. 당시 기자는 ‘통합 토·주공 사장 관료 출신을 배제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뒤 관료 출신 지원자 3명 중 2명은 아예 면접을 포기했다. 당시 LH 임원추천위원회가 추린 3명의 후보에는 관료 출신이 한 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정부로서는 기관장 제청과 대통령 임명 단계에서 관료 출신을 솎아내면 될터인데, 왜 공모 과정에서 이런 입장을 ‘흘린’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거래소의 특수성이다. 거래소는 공공기관이지만 정부가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일반적인 공기업과 달리 주총에서 3명의 후보 중 한 명을 이사장 후보로 먼저 선임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단계 전에 정부 입장이 전달되지 않으면 자칫 관료 출신이 최종 후보에 오를 수 있다. 둘째는 ‘관료 출신 배제’를 미리 밝힘으로써 3명의 후보군을 실제 선임할 만한 인사들로 다 채울 수 있다.

정부가 ‘미는’ 사람이 주총에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까. 충분히 가능하다. 거래소는 국내외 금융투자회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으로 구성된 39개 주주사가 주주총회에서 지분율에 비례해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 결국 정부의 영향력은 3명 후보를 뽑는 단계까지만 미친다고 보는 게 맞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