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급등하며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29일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0.11%포인트 오른 연 2.75%를 나타냈다. 대신증권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분주하게 주문을 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금리가 급등하며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29일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0.11%포인트 오른 연 2.75%를 나타냈다. 대신증권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분주하게 주문을 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의 가파른 상승(채권가격 하락)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는 시장의 경고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재정적자를 국채 발행으로 메우고 또 늘어난 국채는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형태로 초저금리를 유지해 왔지만 언젠간 뿌린 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투자자들을 갈수록 예민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돈풀기 정책을 정상 상태(normality)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이른바 ‘N의 공포’다.

◆‘살얼음판’ 변한 안전자산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의 급등은 서로 다른 원인에서 출발했으나 모두 기존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요동은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주 국채 매입 규모를 줄여 돈을 푸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게 빌미가 됐다. 미국 대도시 주택 가격이 14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경제지표 회복이 양적완화를 지속해야 하는 근거를 약화시키고 있어서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금융시장실 부장은 “1994년과 2004년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의 공포를 되살렸다”고 말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서 벗어나기 위한 양적완화 정책이 물가 상승 기대심리를 키웠다. 주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채권시장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대거 이동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美·日 채권값 급락…투자자 패닉] 돈 찍어 경기부양 '역풍'…채권發 금융위기 '공포' 커졌다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 급등은 글로벌 최고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흔들어 놓으며 일부 투매 징후도 감지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표면금리 연 3.5%짜리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은 이달 초 액면가 대비 107에서 28일(현지시간) 104로 급락했다. 미국 주택가격 회복세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 우려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 재정 악화와 국채 금리 급등, 금융회사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 급등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거듭해온 양적완화의 가장 우울한 결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일본 국채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대형 시중은행의 자기자본은 10%가량 감소한다. 채권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보유 채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시마모토 고지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는 “올해 안에 국채 10년물 금리가 현재 연 0.9% 수준에서 연 1.4%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일본 채권 금리 급등은 세계에 퍼져 있는 달러와 엔화 자금을 본국으로 복귀시키며 이머징마켓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을 불러올 수 있다. 김동일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한국채권운용부문 대표는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출구전략에 들어가면 돈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며 이머징마켓의 유동성 축소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상승 속도 조절 전망

다수의 시장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국채 금리의 상승 속도를 조절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경제 둔화, 유럽 경제의 회복 지연,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미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물가 상승보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큰 상황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최석원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상승을 이끄는 것은 물가 상승 또는 신용위험 상승인데, 미국과 일본의 채권 금리 상승 동인은 물가 상승 위험”이라며 “최근 경제지표들로 미뤄볼 때 이들 국가의 물가상승률은 앞으로도 한동안 통제 범위 안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구마노 히데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장기 금리를 제어하려고 하면 오히려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호 기자 /도쿄=안재석 특파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