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팀스의 경영권을 확보해 퍼시스와의 관계를 끊고 주주가치를 극대화시키겠다.”

‘슈퍼개미’로 불리는 김성수 씨는 지난해 가구회사 팀스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이후 팀스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현 경영진과 대결구도를 만들어 갔다. 지난 1월에는 KYI라는 M&A 자문사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김씨 측은 일반투자자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으면서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14일과 19일 돌연 5%가 넘는 지분을 장내에서 매도했다. 자문사인 KYI 측은 “김씨가 많이 지친 것 같다”고 매도 배경을 설명했지만, 누가 봐도 김씨의 행위는 ‘먹튀’였다. 작년 10월 말 1만750원이던 팀스 주가는 김씨가 지분을 처분했던 지난 14일 장중 2만1300원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20억여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먹튀’ 사례는 2004년 최초의 슈퍼개미라 불리는 K씨의 방법과 비슷하다. 당시 K씨는 S식품회사 주식을 매입, 경영참여를 선언한 뒤 주가를 100배 가까이 올려 1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이후에도 슈퍼개미의 등장과 분쟁이슈로 해당회사의 주가가 요동치는 사례는 많았다. 2005년 S전자에 나타난 S씨, 2008년 H창투에 나타난 L씨 등은 주가를 올려놓은 뒤 경영참여 목적을 바꾸거나 지분을 되팔아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

매년 발생하는 슈퍼개미의 ‘장난’에 금융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시세 변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풍문을 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조항(178조)이 존재하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해명이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앞서 ‘5% 이상 지분을 취득할 경우 보유 목적을 좀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김씨는 이 규정도 역이용했다. 자세한 목적과 소송 진행사항을 명시해 투자자를 안심시킨 뒤 지분을 팔았다.

슈퍼개미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지만,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다. 적대적 M&A에 노출된 회사는 “지켜보겠다”고만 말할 뿐 뚜렷한 해명조차 없다. 제2의 팀스 피해가 우려되지만 투자자들이 보호받을 길은 멀어 보인다.

김태호 증권부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