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본시장이 작년부터 심화된 ‘돈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장기 투자자금이 증시에 유입되기는커녕 개인들의 단기자금마저 빠져나가고 있다.

‘돈가뭄’은 주식거래대금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루 평균 주식거래대금은 2011년 6조8631억원까지 늘어났으나 작년에 4조8236억원으로 줄었다. 올 들어 지난 15일까지는 4조5120억원으로 더 감소했다. 2011년과 비교하면 34.2% 줄었다. 펀드수탁액도 2009년 말 388조원에서 작년 12월 325조원으로 63조원(16.2%) 감소했다. 은행 예금과 보험료 적립금이 계속 증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투자처로서 자본시장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퇴직연금시장이 커진다고 하지만 자본시장에선 남의 얘기다. 작년 6월 말 현재 54조원인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주식, 채권 등 자본시장에 유입되는 실적배당형 운용상품은 3조원(5.5%)에 불과했다. 대부분 1년 만기 정기예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에 투자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런 ‘돈가뭄’의 원인으로 금융권역 간 불균형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사 전체 이익규모가 1개 은행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증권업계 전체의 순이익은 2조2000억원이다. 국민은행 순이익(2조원)과 엇비슷하다. 그만큼 불균형이 심하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자본시장 본연의 임무인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 미흡하다. 기업들의 주식발행(IPO·유상증자)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가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은행차입(정책금융 포함) 비중은 99.9%에 이른다. 자본시장이 중소기업엔 무용지물이라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는 금융당국의 은행 중심적 시각, 외환위기 후 은행 중심 구조재편, 최근 글로벌 규제 강화 추세 등으로 권역별 불균형이 심화됐다고 진단한다. 저축성 보험에만 10년 가입 때 이자소득을 비과세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저축성 보험은 다른 금융상품과 경쟁관계인데 이 상품에만 비과세 혜택을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임병익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장은 “이번 세제개편에서 업계의 숙원인 10년 이상 장기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은 결국 제외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