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2일 오후3시32분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포스코특수강과 삼보E&C가 지난달 30일 나란히 상장을 철회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 알앤엘삼미는 지난달 16일 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접었다. 예상했던 만큼 공모가를 받지 못하게 됐거나 유상증자에 대한 주주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상장기업 수는 32개 감소했다. IPO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도 작년보다 80% 이상 급감했다. 경기 둔화, 기업 실적 악화,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계획 철회하는 기업 줄이어

상장기업 수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IPO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올 IPO 시장은 말그대로 ‘한겨울’이다. 올해 새로 상장한 기업은 31개(유가증권 11개, 코스닥 20개)에 불과하다. 작년(87개)보다 56개나 줄었다. 수요예측 결과 공모가가 낮아져 자진해서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산은금융지주와 미래에셋생명, 현대오일뱅크에 이어 포스코특수강과 삼보E&C도 상장을 철회했다. 포스코특수강의 경우 가능한 한 이달 상장하려 노력했으나 공모가격이 예상을 밑돌자 꿈을 접었다. IPO를 추진 중인 LG실트론의 상장도 불투명하다. 경기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증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높은 가격에 공모주를 인수하려는 투자자가 적기 때문이다.

IPO를 통한 자금조달 금액도 급감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3904억원만 조달하는 데 그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2조895억원)에 비해선 81.3% 줄었다. 11월 실적도 좋지 않다. CJ헬로비전(2932억원)과 지엠비코리아(498억원)가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지만 흥행에 실패해 주관사들이 떠안은 물량만 약 700억원이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실적도 부진하다. 10월 말까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1조493억원에 그치고 있다. 작년(5조5181억원)보다 81.0% 줄어든 규모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나금융(1조3000억원) 신한금융(1조1000억원) OCI(6000억원) 등 대규모 유상증자에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몰렸지만 올해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에 성공을 해도 모집금액은 목표치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유상증자에 나선 웅진씽크빅은 당초 예정 금액인 232억원보다 적은 174억원을 조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IPO시장 부진 장기화될 듯

주식시장 침체와 이에 따른 자금조달 부진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상증자나 IPO 투자자들은 기업의 주가 상승 가능성을 보고 돈을 투자한다.

경기 침체로 한국 주식시장도 ‘장기 박스권’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10~20% 할인된 공모가에 주식을 받아도 일정이간 이후 주가가 공모가를 넘어서지 못하면 차익 실현을 하지 못하고 보유할 수밖에 없다.

IPO시장은 ‘저성장’의 직격탄을 맞는다. 불황으로 상장 예정 기업의 실적이 부진하게 되면 기관투자가들은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깎게 된다. 주식시장 침체로 동종업계 상장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상장 예정기업의 공모가를 낮추고 있다. 포스코특수강이 상장을 철회한 이유도 수요 예측에서 기관들이 제시한 공모가격이 희망 공모가(2만8000~3만3000원)를 크게 밑돌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의 IPO는 경기와 더욱 밀접하다. 대기업들이 장기 저성장 국면을 예상해 선제적으로 설비투자를 줄이게 되면 납품 업체의 실적은 좋아질 수가 없다. 실적이 나빠지면 상장 요건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동호 신한금융투자 ECM(주식자본시장)부 팀장은 “상장 주관사 계약을 체결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부품 업체들이 대기업의 설비투자 축소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성장률이 3%로 내려앉은 데다 주식시장도 침체돼 있어 IPO나 유상증자를 미루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