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51분께. 환율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깜짝 놀라 볼펜을 떨어뜨렸다. 이날 새벽에 끝난 역외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 것을 보고 부지런히 달러를 내다팔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이 갑자기 치솟았기 때문이다. 개장 초 달러당 1080원 선을 위협하던 환율은 9시50분부터 뛰기 시작하더니 3~4분 만에 1084원대로 급등했다. 9시50분은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이 환율방어 의지를 밝힌 기자간담회 내용이 시장에 알려진 시간이었다.

◆외환시장에 선전포고

최 차관보는 이날 간담회를 시작하자마자 “최근 외환시장 움직임이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원화가 강세로 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결제를 미루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부추기는 일부 딜러도 있다”며 구두 경고에 나섰다. 전날 박재완 장관이 “최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를 지켜보고 있다.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최 차관보는 이어 “환율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다음주 중 선물환 포지션 한도 조정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은행들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줄이겠다는 얘기였다. 구두개입 수준이 아니라 직접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현재 외국은행 국내 지점의 포지션 한도는 자기자본의 200%, 국내 은행은 40%로 돼 있다. 정부는 이를 각각 150%와 3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장관이 전날 구두 경고를 했는데도 이날 환율이 떨어지자 원화강세에 베팅하고 있는 시장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시장개입성 달러 매수도 나왔다. 외환당국이 10억달러가량의 달러를 사들인 것으로 시장은 추정했다. 결국 이날 원·달러 환율은 2원70전 상승한 1085원90전에 마감, 사흘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외환관리 3종세트 대두

선물환 포지션이 축소되면 외환시장에서 은행의 달러 매도 압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구조는 이렇다. 수출기업들은 환헤지를 위해 선물환을 매도하고 은행은 고객인 기업의 요청에 따라 반대로 선물환을 매입하게 된다. 선물환을 매입한 은행도 이를 헤지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팔거나 없을 경우 달러를 빌려와 매도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현물시장에는 달러 매도가 늘어나며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선물환 포지션을 줄이게 되면 은행은 매수 포지션을 줄이게 되고, 기업들의 매도 포지션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 6월에도 환율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선물환 포지션 규제를 한 차례 축소한 바 있다.

정부는 또 ‘외환시장 3종 규제세트’ 중 선물환 포지션 규제뿐만 아니라 은행세(외환건전성 부담금)를 올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은행세는 은행의 비(非)예금성 외화부채에 0.02~0.2%가 부과되고 있다. 다만 은행세 손질은 선물환 포지션 규제의 효과를 봐가며 단계적으로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 축소는 관련 법규 개정이 필요 없는 반면 은행세 부담금 상향은 외국환거래법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다.

◆너무 가파른 환율 하락

정부가 이처럼 외환시장 규제 조치를 꺼내든 것은 최근 환율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판단에서다. 최 차관보는 “환율이 올해 고점(5월25일, 1185원50전) 대비 10%, 최근 3개월간 5% 절상됐다”며 “(이런 상태를)그대로 두면 환차익을 노린 자본유입이 훨씬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이 3차 양적완화에 나선 지난 9월13일 이후 원화강세는 상당히 가파르다. 9월13일 이후 이달 21일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4.2% 상승했다. 주요 20개국 15개 통화 중 가장 높은 절상률이다. 중국 위안화와 인도 루피화만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을 뿐 나머지 12개 통화는 모두 약세를 보였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들어서는 달러뿐 아니라 엔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 기업 채산성에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출기업 16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출 마진 확보를 위한 최소 환율은 1080원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환율 1080원’선 방어의 전투사로 직접 나선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유럽 일본의 ‘무제한 돈풀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환율 전쟁’에 한국 정부도 본격적으로 가세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정 수석연구원은 “최근 외환 시장이 펀더멘털보다는 각국 정부의 정책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자 우리 당국도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 선물환포지션

수출기업은 환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시세로 달러를 원화로 바꿀 수 있도록 은행에 선물환을 매도한다. 이 경우 은행은 선물환을 매입하게 된다. 반대로 수입기업이 선물환을 매수하면 은행은 매도한다. 은행의 선물환 매입과 매도의 차액이 선물환포지션이다.

서정환/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