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우리회사 사훈 아느냐"는 면접관 질문에…일어나 회사 로고송 멋지게 '열창'…앉는 순간 번뜩 '앗! 경쟁사 꺼잖아 '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1·여)는 7년 전 롯데 계열사 면접을 봤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씨는 면접 말미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애사심을 보여줄 생각으로 나름 회심의 답변을 날렸다. “늘 최고의 성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롯데 야구팀처럼, 회사를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이씨의 말을 들은 면접관들의 얼굴은 굳어지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영문을 모르던 이씨는 면접이 끝난 후에야 이유를 알았다. 당시 롯데 야구단은 사상 최악의 시절로 4년 연속 꼴찌에 허덕이고 있던 때였다. 야구 문외한인 이씨가 괜히 아는 척을 했다가 역효과를 낸 셈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 “회사를 꼴찌로 만들겠다고 소리친 셈이죠. 얼마나 어이없었을까요.”

하반기 공채 시즌이 되면서 많은 구직자와 기업 인사팀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쉼없는 회사 업무와 지루한 야근이 일상이 된 김 과장, 이 대리들도 ‘면접의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센스 있는 답변이나 행동으로 합격의 기쁨을 누린 사람도 있지만 황당한 실수로 가슴 아픈 기억만 남긴 사례도 적지 않다.

○이거 어느 회사 CM송이지?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장 대리는 정유사 면접을 봤던 4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난다. 앞서 다른 지원자들이 받은 질문들은 대부분 ‘전공 공부는 열심히 했느냐’ ‘자원봉사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느냐’ ‘교환학생을 다녀와 얻은 것은 무엇이냐’ 등 무난한 것이었다. 그에 맞춰 열심히 답변을 준비하고 있던 장 대리에게 떨어진 질문은 “우리 회사 사훈을 알고 있는가”였다. 입사도 안한 회사의 사훈을 어찌 알겠는가.

그는 임기응변으로 최대한 귀여운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가며 회사의 TV광고 로고송을 불렀다. 면접관들의 웃음이 터지자 ‘그래, 순발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구나’하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은 경쟁사의 로고송이라는 것을. 면접장을 나올 때 그의 인사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죄송합니다”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 사원도 과거 철도 관련 공기업 면접에 갔을 때 망신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면접관을 웃기면 성공한다’는 얘기를 듣고, 입장 때부터 튀는 연출로 이목을 집중시키겠노라 마음 먹었다.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들은 그는 면접장 문을 열자마자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뿌~~~~.” 하지만 면접관들의 표정은 냉담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면접관이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자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뭐하는건가?” “…” 주눅이 든 이씨는 제대로 답변 한 번 못하고 도망치듯 면접장을 나왔다.

○장기자랑도 분위기 봐 가며

입사 면접에서 자신만의 개성있는 장기를 보여주는 것은 합격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모씨는 면접 때 ‘특기가 뭐냐’는 단체 질문을 받았다. 다른 면접자들은 승마, 재즈댄스, 색소폰 등 ‘간지 나는’ 특기를 하나씩 댔다. 불어로 보들레르의 시를 읊으며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뽐내는 사람도 있었다.

컴퓨터게임 외에는 이렇다 할 장기가 없었던 김씨는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제 특기는 차력입니다.” 면접관들은 뜻밖의 대답에 놀라 ‘어떤 차력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콧구멍이 남들보다 큰 김씨는 주머니 속에서 500원을 꺼내 콧구멍에 한번에 쏙 넣으며 “이건 주위에서 저밖에 못하는 차력이죠”라고 답했다. 면접관들은 박장대소했다. “사실 술자리에서 친구들 웃길 때나 쓰던 건데, 이게 먹힐 줄 몰랐죠. 콧구멍 덕에 합격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걸요.”

물론 나만의 장기를 뽐낸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랩이 주특기인 최모씨는 한 공기업 면접에서 ‘장기자랑 할 줄 아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랩’으로 대응했다. 영어 실력도 함께 과시할 요량으로 미국 힙합가수인 에미넴의 곡으로 현란하게 랩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사였다. 빠른 랩 리듬에 다른 가사는 묻혔지만, 하이라이트 부분의 ‘mother fuc××’라는 욕설은 너무나 선명하게 면접장을 울렸다. 나이 지긋한 면접관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는 그 뒤로 다시는 면접장에서 랩을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극적인 전화위복(?)

단점이나 실수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합격한 김 과장, 이 대리들도 있다. 입사 전 해외에 체류 중이던 이모 과장은 면접 당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정장이 구겨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깨끗하게 다려 짐에 넣어 부치고 간편한 캐주얼 차림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짐이 분실된 것이다. 면접까지는 3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급하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정장을 사 입고 면접에 들어갔다. 무난하게 잘 마쳤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뒤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삐져 나와 달랑거리는 태그가 면접관들에게 비쳤다. “자네 왜 옷을 그렇게 입고 왔는가?” 그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그만큼 회사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진심이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삼성전자 마케팅부서에 지원한 이씨에게 떨어진 프레젠테이션(PT) 면접 주제는 “삼성은 ‘자전거’를 포기해야 하나”였다. 준비시간은 1분. 이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마케팅 수업에서 들었던 각종 기법을 동원해 자전거 사업을 분석하고 당당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삼성은 자전거 사업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면접관이 발표하던 이씨의 말을 끊었다. “그 자전거가 아닌데?” 문제에 등장한 자전거는 삼성 계열의 패션업체 제일모직의 빈폴 브랜드에 새겨진 자전거 로고였다. 경쟁사인 LG패션에서 ‘개’ 로고의 헤지스를 앞세워 빈폴을 추격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 것인데 문제를 잘못 이해한 것. “앞이 캄캄했지만 일단 제가 분석한 내용을 다 발표하고, 즉석에서 의류브랜드에 대한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어떻게 붙었는지 저도 궁금해요.”

정소람/윤정현/김일규/강경민/강영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