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 세력'의 진화 - 어느 주가조작 사범의 고백

PC방 HTS 이용해 IP주소 세탁…작전으로 번 돈, 한 푼도 추징 안당해
"강남 룸살롱, 작전세력이 먹여 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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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갈 때는 하루에 룸살롱을 4번도 갔죠. 지금도 강남 룸살롱은 주가조작하는 사람들이 먹여 살린다던데….”

전직 주가조작 ‘선수’인 A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2000년대 초 한 코스닥 상장사와 관련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30대 후반의 나이에 구속됐다. 회사 대표이사 겸 대주주, 증권사 지점장, 사채업자, 조직폭력배 등 60여명이 결탁해 회사 인수·합병(M&A)을 재료로 주가를 끌어올린 대형 사건이었다. 주모자였던 A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7년 출소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지금은 손을 씻고 기업 M&A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증권사 출신으로 일찌감치 ‘작전’에 눈을 떴다. 그는 “증권 일을 하다 보니 그쪽 바닥의 생리가 보였다”며 “회사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포’(작전주동세력)가 돼서 ‘사이드포’(하수인)를 부렸다”고 회고했다. 사이드포는 주포의 지시를 받아 주식을 매입하거나 매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으로 서로가 누군지 모르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한다. A씨는 “250개 계좌를 한꺼번에 움직이면 금융당국이나 거래소도 잡지 못한다”며 “선수들은 어떤 날에 주가조작을 하면 잡힐 수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포와 사이드포들은 ‘깔세’(보증금 없는 월세)로 사무실을 얻거나 동네 PC방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식으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세탁한다. 사이드포를 부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어떤 사이드포들은 미리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기기도 한다”며 “이런 걸 ‘뒷박 친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폭을 고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도 주가조작을 하면서 사이드포들에게 ‘뒷박’을 맞은 후 서둘러 손을 털고 나오다 금융당국과 검찰에 적발됐다.

A씨가 애용했던 ‘작전’ 중 하나는 무자본 M&A였다. 남의 돈을 끌어다가 상장사를 인수한 뒤 더 비싸게 파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주가 띄우기가 필수였다고 한다. 주가가 높을수록 M&A에 필요한 돈을 많이 빌릴 수 있어서였다. A씨는 “주가를 3배 이상 올린 적도 있다”며 “어떤 경우엔 M&A를 포기하고 시세차익만 남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주가조작을 통해 번 돈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금액을 검찰에서 한푼도 추징당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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