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가 굳히기·틱떼기…달랑 1~3명이 초단타 수십개 종목 치고 빠지기
"전업투자자 100만 명은 먹잇감"
증시 휘젓는 '新 게릴라'…'시세조종 세력'의 진화

서울 마포구에 사는 K씨는 2007년 증권회사를 그만둔 뒤 전업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퇴직금 중 1억원을 종잣돈으로 서울 여의도 인근 오피스텔에서 데이 트레이딩을 통해 번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 왔다. 문제가 생긴 것은 2010년 상반기. 보유 종목의 주가가 급락해 5000만원가량 손실을 본 뒤부터였다.

마음이 급해진 K씨가 눈을 돌린 곳은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이었다. 그는 가족과 지인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총 19개 개별 주식 ELW에 5867회에 걸쳐 가장 매매 및 허위 매수 주문을 내 시세를 조종했다. 이를 통해 83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올렸으나, 금융감독원에 덜미를 잡혔다. K씨는 파생상품을 대상으로 ‘나홀로 작전’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금감원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증시에서 이른바 ‘작전’으로 불리는 시세 조종 행위가 진화하고 있다. 작전세력의 규모는 작아졌고 작전 기간도 짧아졌다. 작전에 동원하는 자금도 줄었다. ‘상한가 굳히기’ ‘틱떼기’ ‘재료매매’ 등 수법도 다양해졌다.

과거 작전을 펼치려면 일정한 세력이 필요했다. 돈을 대는 ‘전주(錢主)’와 기획자, 작전을 지휘하는 ‘주포’, 기획에 맞춰 주식을 매매하는 ‘사이드포’ 등 최소 5명 이상이 세력을 구성했다. 최근엔 아니다. K씨처럼 나홀로 작전을 하거나, 달랑 2~3명이 시세를 조종하기도 한다. 작전 기간도 과거에는 1개월 정도로 길었으나 요즘은 2~3일이면 충분하다.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작년 말 금감원에 적발된 P씨는 이런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나홀로, 종목당 2~3일간, 상한가 굳히기 수법’을 사용했다. P씨는 전업투자자들이 전날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을 다음날 개장과 동시에 매수하는 ‘상한가 따라잡기’라는 투자 전략을 애용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P씨는 증권사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을 지켜보다 주가가 10% 이상 급등하는 종목을 포착하면 대량의 상한가 허위 매수 주문을 내 그 종목 주가가 실제로 상한가에 도달하도록 만들었다. 다음날 개장과 동시에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려 주가가 더 뛰면 차익을 실현했다. P씨는 이런 방법으로 총 52개 종목의 주가를 조작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 종목의 주가를 일정 기간 조작했다면 최근엔 종목당 2~3일씩 수십개 종목을 건드리는 ‘초단타형 작전’이 유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작전 수법이 변하고 있는 것은 투자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루종일 주식 투자에만 몰두하는 전업투자자가 100여만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메신저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여기에 슬쩍 정보를 흘리면 치고 빠지기가 가능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종일 HTS를 들여다보면서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전업투자자들이 작전꾼들에게는 비옥한 토양과 같다”며 “그러다 보니 ‘세력’을 규합하지 않고 나홀로 작전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작전의 역사를 따져보면 최근 작전세력은 5세대쯤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형태의 작전이 유행하다 보니 불공정 거래 행위가 늘어나고 작전에 가담하는 직업군도 넓어지고 있다. 금감원이 상반기 적발한 불공정 거래 행위는 134건으로 지난 1년 동안 적발 건수(209건)의 64%에 이른다. 적발된 사람들은 전직 증권사 직원, 공무원, 가정주부, 대학생 등으로 다양하다.

김동윤/안재광 기자 oasis93@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