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들 '시스템트레이딩' 에 꽂혔다
‘투자 전략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운다.’

서울 강남 투자자들이 냉철한 ‘투자 기계’에 마음을 빼앗겼다. 사람 대신 컴퓨터로 자동 매매하는 시스템트레이딩이 대상이다. 이 시스템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시장 등락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급락장을 경험한 고액 자산가들은 ‘더 이상 시장에 휘둘리기 싫다’며 시스템트레이딩펀드에 관심을 갖는 모습이다.

◆‘물타기’를 모르는 컴퓨터가 대안

시스템트레이딩이란 금융공학에 기반해 통계학적으로 검증된 로직(전략)에 따라 기계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선물옵션 시장에서 활용된다. 현물시장과 달리 시장이 하락해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일부 자문사와 트레이딩업체 위주로 확대되고 있지만 대부분 투자자에겐 아직 생소하다.

대우증권의 한 강남권 프라이빗뱅킹(PB)센터는 지난해 10월 시스템트레이딩을 활용한 사모펀드를 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 지점 관계자는 “고액 자산가를 위주로 두 차례에 걸쳐 총 150억원을 모집했다”며 “자산의 절반은 채권, 나머지는 코스피200선물·옵션 자동매매에 넣어 현물주식 노출을 ‘제로(0)’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파동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BTS’ 전략이 이 펀드의 기반이다. 전략을 개발한 ‘브리스포럼’ 측은 “해외 변수가 국내 시장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간섭파가 일어나 시장에 잡음으로 작용한다”며 “이 간섭파를 포착해 시장의 흐름을 투명하게 예측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KAIST 물리학과 출신인 이항경 대표가 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다. 기계공학과 우주과학 영역의 현직 대학교수들이 나머지 인력을 구성하고 있다.

◆과거에 최적화…돌발 변수도 따져야

지난해 11월 코스피지수가 3.22% 내렸지만 이 펀드는 0.8% 수익을 올렸다. 대신 시장이 좋았던 올초에도 월별 수익률은 1%대를 넘지 않았다. 브리스포럼 관계자는 “하루 손실폭을 0.03%로 제한해 시장에 흔들리지 않고 절대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시장 진폭이 클 때 오히려 수익 기회가 커지는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시장이 10% 이상 급락했던 지난해 8월의 경우 BTS 전략에 기반한 자동매매로는 오히려 24.0%의 수익을 올렸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난해부터 일부 증권사들이 시스템트레이딩을 활용한 랩 상품이나 펀드를 선보이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은 최근”이라며 “주가연계증권(ELS)에 몰렸던 강남 투자자들이 지난해 하반기 급락장에서 큰 손실을 본 후 절대수익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대우증권은 상품 이해도가 높은 기존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사모펀드 3호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손절매 등을 컴퓨터가 대신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퀀트펀드보다 리스크 관리에 더 치밀하다”며 “다만 과거 통계에 수익률이 최적화돼 있는 것은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컴퓨터를 통한 자동매매의 특성상 시스템 오류나 전산사고가 발생하면 큰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시스템트레이딩

미리 입력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매매하는 방법으로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시스템.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금융공학적 분석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퀀트펀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시장의 신호를 포착해 매매시점까지 컴퓨터가 결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