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즐기는 우량기업 '리파이낸싱' 바람
우량 기업들의 저금리 채권 발행을 통한 리파이낸싱(차환)이 활발하다.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와 경기 둔화 전망으로 투자자금이 우량 채권에 몰리고 있어 물가상승률보다도 낮은 이자에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6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시장 금리가 하향 안정 추세를 나타내고 있어 기업에 우호적인 채권시장 환경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금리 차입금 상환

저금리 즐기는 우량기업 '리파이낸싱' 바람
SK는 8일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시중은행 대출금을 갚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15일 연 3.89%에 500억원의 3년 만기 채권을 발행한 뒤 연 4.99~5.42%의 고금리 대출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리파이낸싱이 완료될 경우 차입금 100억원당 연 1억원 이상의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올 들어 신용등급이 오른 기아자동차와 현대위아는 더 큰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기아차는 지난달 24일 연 4.02%로 2000억원을 빌렸다. 기존에 연 5.33~8.60%로 발행한 회사채를 갚기 위해서다. 현대위아는 15일 연 4.21%로 돈을 구해 연 6.95~7.10%의 채권을 상환할 계획이다.

낮은 시장금리는 채권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은 2조9130억원으로 4개월 연속 늘어났다. 회사채 평균 발행금리가 지난 8월 초 유럽발 신용경색 우려로 연 4.46%(AA등급 3년물 기준)까지 상승했으나 지속적인 투자자금 유입에 힘입어 전날 연 3.98%까지 빠진 데 따른 영향이다.

경기 둔화에 대비하기 위한 현금 확보 수요도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발행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차입 구조 개선·설비 투자에 활용

일부 기업들은 채권시장의 저리 자금을 차입 구조 장기화와 설비 투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9일 연 3.76%로 3년 만기 채권 1500억원을 발행해 기업어음(CP) 상환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채와 금리 차이가 거의 없는 만기 한 달짜리 CP를 한꺼번에 갚아 재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LG화학과 웅진에너지는 시설투자비를 저리로 조달했다. LG화학은 지난 5일 회사채시장에서 연 3.83% 수준에 돈을 빌려 대산공장 증설 투자에 쓰기로 했다. 웅진에너지는 웨이퍼 제조시설을 개선하고 원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연 4.0%로 19일 12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예정이다.

손쉬운 현금 조달은 인수·합병(M&A)이나 자사주 매입, 배당 등에 대한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주식시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5개월여 동안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쓴 금액은 9900억원으로 상반기 전체 6200억원의 1.5배를 넘어섰다.

◆우호적인 환경 지속 전망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회사채 발행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고채 금리가 장기간 낮은 상태로 머물면서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금리를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강성부 동양증권 채권분석팀장은 “보험과 연기금 자산의 빠른 성장으로 저금리가 고착화되고 채권 발행 만기도 길어지고 있다”며 “이 두 가지가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뉴노멀(새로운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기금과 보험사의 채권 운용 자산이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면서 국고채와 회사채 공급량을 능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 리파이낸싱

refinancing.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새로 차입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한다. 기존의 채무를 변제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주로 자금 조달 비용을 감축하려는 목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