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 공포가 19일 국내 증시를 강타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금융 불안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코스피지수는 사상 세 번째 낙폭인 115.70포인트(6.22%) 급락했다. 시가총액도 하루 새 64조8200억원이 증발했다. 증시 하락이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오고 또다시 경기 악화 우려가 증시를 끌어내리는 악재의 순환고리(네거티브 피드백 루프)가 만들어지는 양상이다. 시장에선 "미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지난 8,9일 이틀 연속 장중 140포인트 이상 빠질 때보다 분위기가 더 나빠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쉽사리 바닥을 논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시총 상위주 10% 이상 급락

유럽과 미국,아시아 증시로 이어지는 도미노 급락세가 재연됐다. 미 경기지표 악화로 유럽 증시가 급락 마감한 데 이어 미 증시도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로 지난 3월 이후 최고치로 나타난 반면 8월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는 -30.7로 200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석원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물가마저 높게 나와 미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쓸 카드가 없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는 개장과 동시에 1800선이 맥없이 무너진 채 출발했다. 정보기술(IT)에 이어 자동차 화학 조선주로 '패닉 셀링'이 급속히 전파됐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중공업 LG화학 등이 10% 이상 급락하는 등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들이 예외없이 하락했다.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총 상위 종목의 낙폭이 커지면서 시장 공포를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에서 프로그램매도 호가 효력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내려진 데 이어 유가증권시장도 지난 9일 이후 열흘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한국 IT산업 불안감이 낙폭 키워

일본 닛케이평균주가와 대만 가권지수 등 아시아 주요증시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 지수 저점을 재차 뚫고 내려갔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2534.36에 마감,연중 최저인 9일 수준(2526.07)을 위협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2~3%대 하락률에 그친 다른 아시아증시보다 2배나 떨어졌다. 한국 경제가 IT 자동차 등 글로벌 수요에 민감한 수출중심 구조여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시총 상위 종목을 무차별적으로 내던진 점도 낙폭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IT기업들이 업계 패러다임의 변화에 뒤처져 산업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며 "IT주 급락이 지수 낙폭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바닥을 논하기 어렵다

코스피지수 하단은 1680~1700선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주 장중 저점인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주가수익비율(PER) 7.4배(1700선)에서 저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미 있는 지지선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글로벌 경기 둔화를 반영해 기업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면 PER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상황은 펀더멘털(내재가치)보다는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하단을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오는 26일 열릴 미 중앙은행(Fed) 연례총회에서 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글로벌 증시 향방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 자리에서 '3차 양적완화(QE3)'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리아 '바겐세일'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차(자동차) · 화(화학) · 정(정유) 종목이 올 고점 대비 30~50%씩 빠져 실적 하향을 감안해도 가격메리트가 크다는 분석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