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주(株)들의 주가 향방이 진퇴유곡(進退維谷)이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궁지에 빠져있는 모양새다.

기업분석 전문가들인 여의도 애널리스트 역시 불투명한 제약주의 앞날을 우려할 뿐이다. '얼어붙은 제약시장에 봄은 오는가?',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릴까?',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가 가능할까?' 등 물음표가 붙지 않은 분석보고서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제약주 그래프가 앞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려면 해외진출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비우호적인 정책 탓에 내수시장에서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 제대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상반기엔 테이블 셋팅 좋았는데"…정부 규제가 '찬물'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부터 연초까지만 해도 올 상반기 제약업종의 최대 이슈는 오리지날 약들의 잇단 특허 만료에 따른 제네릭 제약사들의 실적 개선폭 여부였다.

그러나 국내 상위 10개 제약사의 원외처방 시장내 점유율 개선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 4월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조사 등 정부 규제로 신제품 영업력이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김신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약 2000억원 규모의 오리지날 특허 만료로 인해 상반기 테이블 셋팅은 실제 훌륭했다"며 "제네릭으로 잘 차려진 밥상이 정부의 규제로 빛을 바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스모틴(3월), 아타칸(4월), 자이프렉사(4월), 아프로벨(6월)의 특허 만료로 국내 제약사에 유리한 제품 라인업으로 셋팅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

김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상위 10개 제약사의 원외처방 시장 내 점유율 개선 속도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지난 4월부터 식약청,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복지부 공동으로 의약품 리베이트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내수 시장 성장에 거는 기대는 접어둬야 할 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약업종 투자자들에게 '내수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자'고 달랜 전문가도 나왔다.

정보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제약시장의 성장률 둔화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2009년까지 평균 12.2%의 성장률을 보이던 제약시장은 2010년 7% 증가로 성장세가 크게 꺽이는 모습을 보인 것에 이어 2011년에도 지난해 대비 6.8%의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의약품 소비 억제, 리베이트 규제 등을 단기 저성장으로 몰고갈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정 애널리스트는 "상위 제약사들은 2009년부터 계속해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반면에 제약 유니버스는 2010년 4.5% 매출 증가율을 보인데 이어 2011년 4.1%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들의 특허만료가 이어지지만, 제네릭 시장의 공격적인 확장은 예전보다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제약업종에 대해 내수시장에서의 성장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게 정 애널리스트의 판단이다.

◆기댈 곳은 이제 '약국외 판매'와 '담뱃값 인상'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제약업종의 반등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 허용과 정부의 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담뱃값 인상 여부 등 때문이다.

이정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무산위기에 처해졌던 일반의약품(비처방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재추진될 전망"이라며 "지난 3일 보건복지부는 약사회의 반발에 부딪쳐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유보입장을 표명했으나, 국민들의 거센 비난여론에 결국 보건복지부가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고 전했다.

이날 현재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허용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검토 중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개정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안전성을 이슈로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를 금지하는 논리적 근거가 약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슈퍼판매 추진에 대한 국민여론과 청와대의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 역시 상당수다. 최종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건복지부의 약사법 개정안이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원만히 통과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약사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자유판매약 목록 결정에서 현재 의약계의 첨예한 대립 상황을 고려한다면 의미있는 가정상비약 목록이 완비될 지도 의문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안타깝게도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이익단체나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거나 지지부진해지는 일이 늘고 있다"며 "제약업계에 직접적인 정책들은 아니지만 공무원의 복지포인트 관련 건강보험료 책정 개선안 역시 공무원의 내부 반발로 흐지부지 흘러가고 있고, 경제특구 의료 영리법인 도입도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말해 현재 정부의 의료 및 의약계에 대한 정책 추진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제약사의 약가 인하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최 애널리스트는 담뱃값 인상 여부가 정부의 규제 완화를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이는 또 서민물가 안정을 저해하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는 "보건복지부는 올해 담뱃값 1000원 인상을 추진했지만, 서민 물가 안정을 저해한다는 총리실과 정치권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며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기준으로 국민건강증진기금이 354원인데 지난해 1조630억원이 건강보험공단에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2010년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1조2994억원 적자였고, 올해 공단에서 예상하는 당기수지 적자가 5000억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담뱃값 인상분이 건강보험 재정에 활용된다고 가정할 때 건강보험 재정 개선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현재 보험급여비의 30%를 차지하는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영업 활동을 강력하게 단속해 약가 인하로 압박하고 있는데 담뱃값 인상이 제약업에 직접적인 수혜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개선으로 인해 제약사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정부의 손이 좀 더 가벼워 질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