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신재생에너지업계가 '헤지펀드'를 기다려온 이유

최근 '토종 사모펀드(PEF)'가 세계1위 골프용품 제조업체 아쿠쉬네트를 인수ㆍ합병(M&A)했다. 더욱이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있어 금융업계도 한껏 고무돼 있는 분위기다. 헤지펀드로 볼 수 있는 토종 PEF가 대규모 해외 M&A에 나서 성공한 첫 사례여서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헤지펀드가 태어난 곳, 미국에서도 헤지펀드가 PEF 시장에 잇따라 참여하면서 이들의 경계는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

PEF(Private Equity Fund)는 투자자들(대부분 자산가)을 상대로 자금을 끌어모아 경영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나중에 기업이 성장하면 실질적 경영자(전략적투자자 등)와 합의해 보유주식을 처분, 이득을 챙기는 사모펀드다. 헤지펀드와 눈에 띄게 구분되는 것이 '경영참여' 여부다.

PEF는 헤지펀드의 다양한 운용전략 중 하나인 '이벤트 드리븐(event-driven) 전략'과도 대동소이하다. 투자자 자격요건, 설립형태 등 2~3가지 규제(자본시장통합법)를 제외하면 헤지펀드의 영역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금융업계는 연내 도입을 진행중인 '한국형 헤지펀드'와 PEF가 단계적으로 결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래에셋PEF의 '타이틀리스트' M&A…경영참여가 특징

지난 20일. 한국 기업이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와 골프화 브랜드 '풋조이'를 인수했다.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는 세계 1위 골프용품 제조업체인 아쿠쉬네트의 대표 브랜드다. 타이틀리스트 공프공과 풋조이 골프화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에 달한다. 아쿠쉬네트는 191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도시인 아쿠쉬네트시에 설립됐으며, 지난해 매출액이 약 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곳은 다름아닌 한국의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사모펀드(PEF)다. 특히 이번 M&A의 인수금액인 12억달러(약 1조3200억원) 중 대부분이 미래에셋PEF를 통해 조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토종PEF가 대형 글로벌 M&A에 성공한 첫 사례다.

반면 국내에서 '먹튀'로 불리며 유명해진 PEF도 있다. 2003년부터 외환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론스타펀드가 그 장본인이다. 미래에셋PEF 역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경영에 참여한 것처럼 일정기간 아쿠쉬네트의 경영에 관여할 계획이다. 헤지펀드와 PEF를 구별해 주는 것이 '경영참여' 여부다. PEF는 기업경영에 관여해 기업의 가치(펀더멘털)를 높여 이득을 얻는데 반해 헤지펀드는 기업경영과 무관하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한국외환은행을 인수, 은행업을 시작했다. 이후 지분을 매입한 지 7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론스타는 모든 보유주식(51.02%)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최소 7년 이상 장기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게 PEF의 또 다른 특징이다. 즉, 환매(투자금을 돌려받는 것)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밖에 담배제조업체인 KT&G의 경영권을 노리고 이 회사 지분을 사들였던 칼아이칸과 스틸파트너스도 2004년 당시 유명했던 해외 PEF다. 대주주 보유지분이 낮아 경영권 분쟁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기업들을 '이익의 대상'으로 여기는 투자전략이 헤지펀드의 이벤트 드리븐 전략이다.

◆PEF를 보는 두 개의 눈…"경영참여 안된다"vs"순기능 더 많다"

일종의 헤지펀드인 PEF는 이렇게 8~9년 전부터 이미 활발한 투자활동을 벌여왔다. 이 때문에 '한국형 헤지펀드'의 연내 도입에 앞서 PEF에 대한 시장의 논란(투기자본 등)을 서둘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다. '국부유출', '먹튀' 등으로 불리는 론스타의 M&A 사례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서다.

론스타는 아직까지 보유중인 외환은행의 지분을 매도해 이득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에서부터 론스타 임직원이 연루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대주주 적격성(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 논란) 문제까지 M&A 전후로 잇단 악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그러나 PEF가 여지껏 '건전한 투자자본'이 아니라 '투기자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장 분위기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실제 론스타PEF의 은행경영을 옆에서 지켜봐온 김보헌 외환은행 노동조합 위원은 PEF에 대해 "한 마디로 절대 기업경영을 맡겨선 안될 자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PEF의 경우, 최우선 과제가 바로 '비싼 가격에 팔아야한다'이기 때문에 인수기업의 중·장기 계획 따위에 관심이 없다"며 "특히 자신들이 보유한 기업의 지분을 비싸게 사 줄 수 있는 곳들만 물색해 M&A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외환은행 직원들이 하나금융지주의 인수작업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라며 "PEF가 지분을 매각하기 이전부터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있던 게 아니라 PEF가 지분을 시장에 내놓자 이를 매입하려고 움직였기 때문에 명분이 약해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론스타PEF의 외환은행 지분매각 과정을 지켜보면 과거 IMF시절 정부가 부실은행을 퇴출할 때가 떠오른다"라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해 나갈 수 있는 곳들 이외에 공공성을 가진 은행산업 등에 절대로 PEF의 자본이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M&A 업계가 바라보는 PEF도 부정적일까. M&A 전문가들의 시선은 정반대였다.

[헤지펀드가 몰려온다⑥] 허물어지는 경계, 'PEF'의 진화
이창헌 한국M&A투자협회 회장은 "PEF는 국내 금융시장에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PEF는 전략적투자자(SI)처럼 10~20년 동안 기업을 맡아 경영하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통상 5~7년 사이에 주주들의 이득을 위해 차익실현에 나서는 곳이 PEF"라고 설명했다.

그는 "PEF가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득을 내기 위한 것이지, 손해봐도 괜찮다는 쪽은 아닐 것"이라며 "PEF의 태생적 한계를 시장이 일정부분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PEF가 국내 M&A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일반적으로 기업 M&A는 자본력 때문에 무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PEF가 투자해주면 그만큼 M&A 성사 횟수도 많아질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PEF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BW·CB 투자 규제 완화

국내 헤지펀드의 안착을 위해 연구중인 자본시장연구원도 헤지펀드(PEF 포함)의 경제적 순기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나아가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자본시장 제도개선 민관합동위원회'는 PEF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투자시 적용받는 규제를 다소 완화시킬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경제적 순기능 중 하나는 '구조조정시장이나 혁신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 역할'이다. 벤처캐피탈 등을 통해 신생 기업에 대한 자금조달이 가능해질 것이고, 구조조정 펀드를 거쳐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특히 199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바이오기술, 인터넷 등 신기술을 가진 신생 기업들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는데 여기에 주요 자금 공급원이 사모펀드였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최근 헤지펀드의 CB 차익거래가 늘어나고 있으며, 부실채권시장에서 90% 이상을 헤지펀드가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 역시 이러한 PEF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금융위는 "경영권 참여를 위한 지분투자에 어느 정도 특화된 PEF에 대해선 BW, CB 등 메짜닌 투자 제한을 완화하고, 환(換) 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메짜닌(Mezzanine)은 본래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라운지 등의 공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은행 등이 제공하는 담보부융자보다 위험이 크고, 주식보다는 위험이 작아 붙여진 이름이다.

금융위는 "다만, 현재까지 누구든지 설립이 가능했던 PEF는 앞으로 글로벌 규제강화 논의 등을 감안해 등록의무를 부과하는 쪽으로 개선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PEF는의 펀드가입 자격은 종전의 개인 10억원 이상, 법인 20억원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PEF의 시장규모는 2011년 2월 현재, 약 27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내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 이후 미래에셋PEF보다 더 큰 글로벌 빅 딜(deal)을 시도하는 제2, 제3의 '토종 PEF'가 나타날 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