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유럽 신용불안 등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악재들이 또다시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달 2230선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였던 코스피지수는 이날 55.79포인트(2.64%) 급락한 2055.71로 마감되며 120일 이동평균선(2057.63)마저 이탈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를 앞두고 글로벌 유동성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은 차익 실현 규모를 늘리고 있다. 국내 수급이 취약하다는 점과 잘나가던 자동차주가 부품업체의 파업으로 급제동이 걸리면서 주도주가 없다는 점 역시 상승 모멘텀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1) 美경기지표 둔화…완만한 회복 기대

글로벌 경기 둔화되나

국내 경기선행지수의 반등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미국 경기선행지수 상승세가 꺾이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5월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경기지수는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5월 뉴욕주 제조업지수(엠파이어스테이트 지수)도 11.9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밑돌았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동향지수가 상승세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경기 둔화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 반등을 이끌었던 미국 경기 회복세가 둔화됐다는 점은 주목할 요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증시가 경기선행지수 둔화와 함께 조정 국면에 진입하고 있어 글로벌 증시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현재를 경기 회복과 확장을 잇는 '소프트패치'국면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고용 회복 속도가 완만하지만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있고,아시아 지역의 수출경기도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 유럽 재정위기 단기 해결 힘들 수도

유럽 신용 불안 계속되나

유럽발 재정위기는 지난해부터 수면 위를 오르내리며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뜩이나 국채 만기가 몰려 있는 시기에 지난 주말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그리스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3단계 낮췄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는 등 유럽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36%가 유럽 부채위기를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유로화 가치가 출렁이고,달러화 가치의 변동성이 커져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로존 문제는 국채 만기를 연장해주는 수준에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며 "유로존 이슈는 곧 외국인 매도로 이어져 국내 증시에도 악재"라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럽 신용불안 이슈가 1년 가까이 지속돼 온 만큼 악재로서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3) 투기자금 이탈…6월 초까지 수급 부담

외국인 매도 언제까지

외국인은 이달 들어 3조1293억원을 순매도했다. 특히 지난 12일 이후 8거래일 동안 팔아치운 주식만 3조3485억원에 달한다. 주식형펀드 환매 등으로 국내 기관의 수급이 취약한 상황에서 외국인 매도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머징(신흥국) 인플레이션 우려가 원인이었던 2월과 달리 지금은 글로벌 유동성 전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어 외국인 매도가 쉽게 진정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내달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정책(QE2) 종료를 앞두고 신흥국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에서 투기자금 이탈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단기적으로 외국인의 차익 실현 욕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매도가 일단락되기 위해서는 양적완화 정책 종료 이후에도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가 살아나고,유로존 신용불안에 대한 해결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 이 때문에 2분기 이익 전망치가 나오는 내달 초·중순까지는 지금과 같은 수급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4) '차·화·정' 낙폭 커…IT·내수주 관심

주도주 부재 해소 될까

그간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위주로 나타났던 쏠림현상이 단기적으로 증시 낙폭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통상 주도 업종이 차익 실현 매물로 조정을 받을 땐 여타 업종으로 순환매가 유입되며 주도주의 빈 자리를 메워주게 마련이지만,이번 조정장에선 좀처럼 매수세가 확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화학(-7.1%) 운수장비(-10.1%) 등이 하락하는 동안 차기 주도주 후보로 꼽히는 정보기술(IT)업종지수도 4% 가까이 밀려났고,금융주 역시 9% 넘게 빠졌다. 단기 낙폭이 크다는 점에서 향후 나올 기술적 반등도 자동차 화학 등 그간 많이 빠진 주도주 중심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한 차례 반등이 일어난 후엔 주도주 교체 시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민상일 이트레이드증권 투자전략팀장은 "IT 등 뒤처져 있던 업종으로 매기가 옮겨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국내 물가 상승률이 4% 이하로 떨어지면 IT와 함께 유통 등 내수주들도 주도주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다.

강지연/손성태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