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들이 결산기 말 부채를 일시적으로 줄여 재무제표 상 부채가 적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관행에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부채 일시 축소가 불법은 아니지만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SEC는 지난 17일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 같은 규제안을 채택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또는 리포) 매매를 포함한 모든 단기 차입에 적용될 이 규제안은 60일간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된다.

규제안에 따르면 모든 상장사는 분기 말 부채(말잔)뿐 아니라 해당 분기의 평균 부채(평잔)와 최대 부채 규모를 공시해야 한다. 은행 등 금융사는 분기 중 특정일의 최대 부채와 일평균 부채를,나머지 상장사들은 각 월말 기준 최고 부채와 월평균 부채 공개도 의무화한다.

상장사들은 분기 말 부채와 평균 및 최대 부채 규모에 큰 차이가 날 경우 그 이유도 공시해야 한다. 또 차입 목적과 부채가 자본과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야 한다.

대형 금융사들의 부채 일시 축소는 지난 3월 공개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고서에서 재무상태를 실제보다 양호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리포 105'란 일종의 분식회계 기법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금융당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리먼브러더스는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차입(RP거래)하면서 채권을 매각한 것처럼 처리해 부채비율을 낮췄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씨티 등 18개 대형은행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은행들은 지난 6분기에 걸쳐 매 분기 말 회계내역을 공개할 즈음 RP거래를 통해 차입을 줄였다가 다음 분기 초 다시 늘리기를 반복해왔다. 그 결과 분기 말 보고된 부채 규모는 분기 중 부채 수위가 가장 높았을 때보다 평균 42%나 낮았다.

은행들은 그동안 수익을 높이기 위해 RP거래를 통한 단기차입을 늘려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을 써왔다. 단기차입이 많으면 그만큼 리스크가 커지지만 회계보고의 허점을 이용하는 은행들의 관행 탓에 투자자들은 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메리 샤피로 SEC 위원장은 "재무정보는 기업의 향후 전망뿐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도 중요하다는 것이 금융위기를 통해 확인됐다"며 "새 규제안은 기업의 재무위험을 보다 효율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