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44.10포인트 급락하며 시장이 패닉에 빠진 지난 25일.대우증권 명동지점에 최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고액 자산가 A씨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평소 5억~6억원씩 투자하다 주식에서 발을 뺀 지 5개월 만이다. 30분 남짓 담당 프라이빗 뱅커(PB)와 이야기를 나눈 A씨는 그 자리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1억원어치 샀다. 담당 PB는 "지난주부터 '주식에 투자할 때가 된 것 같다'며 A씨가 예금계좌에서 빼 둔 돈으로 주저없이 투자했다"고 귀띔했다.

지수 급락할때 부자들은 움직였다
◆부자들 "급락은 곧 기회"

부자들은 빨랐다. 증시가 언더슈팅(단기 과다 급락)에 빠져있을 때 서울 강남,명동 등지의 PB지점에는 부자들의 주식 매수 문의가 쏟아졌다. 직접투자는 물론 주식형 펀드,상장지수펀드(ETF),랩어카운트 등 간접투자 상품에도 돈이 들어왔다. 25일부터 관련 상품에 5000만~1억원씩 투자하는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어느 지점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떨어지는 칼날'에 소액 투자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던 25일 고액 자산가들은 반대로 주식을 더 많이 쓸어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강남의 한 증권사 PB팀장은 "주가가 오후 들어 소폭이나마 반등하면서 4억원 살 것을 2억원밖에 못 샀다고 안타까워하는 고객이 있었다"며 "이번에 못 산 주식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돈을 넣어두고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송숙영 현대증권 신사지점 과장은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통도 없던 주식 매수 문의가 지난 이틀간 20통이나 왔다"며 "1~2년가량 주식에서 손을 뗐던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적립식 · ETF · 인덱스펀드도 인기

각종 간접투자 상품도 인기다. 우선 코스피지수 1500대에서 주식형펀드 투자자가 부쩍 늘었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월 1000만원씩 불입하는 고액 주식형 적립식펀드 계좌 수가 지난달 144건에서 이달엔 244건으로 늘었다. 지난달 하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이달 들어 주가가 급락하자 주가가 쌀 때 나눠서 투자하는 적립식에 관심이 쏠린 것.

정연아 우리투자증권 골드넛멤버스 WMC부장은 "목돈을 한꺼번에 넣는 것은 불안하기에 주가가 빠졌을 때 저가 매수 차원에서 적립식펀드에 투자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최미경 미래에셋 반포지점 과장도 "반포지역은 강남권에서도 고객들의 투자성향이 보수적인데 과도한 급락 후 반등을 기대하는 고객들의 문의와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랩어카운트와 ETF 등 인덱스펀드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었다. 박혜원 국민은행 청담PB팀장은 "악재로 주가가 빠질 때마다 5000만~1억원씩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고객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부자들도 분할 매수가 대세

PB들이 전하는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방식은 '분할 매수'로 요약된다. 유럽사태나 지정학적 리스크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거액을 한번에 '몰빵'하지 않고 쪼개서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질 때마다 주식이나 관련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강남권에서는 목돈을 5~10회 정도로 나눠 분산투자하고 6~7개월 단위로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지점 PB팀장은 "분산투자하는 부유층은 시점을 잘 잡아 매월 1억원씩 투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1년에 한두 차례 정도 차익을 실현한다"며 "금융위기 이후 3번 차익 실현하고 4번째 분할 매수가 진행 중인데,주가가 크게 떨어진 날은 2억~3억원씩 투자한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 팀장은 "고객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60% 정도의 높은 수익률은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서원식 대우증권 명동지점 과장은 "고객들을 만나 보면 저점을 노려 투자 시점을 잡는 것에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며 "시장에 불안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는 가능한 한 줄이고,수익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자산가들의 투자전략이 은연중 닮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경목/박민제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