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제목의 키워드인 ‘레벨업’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re-rating’이다. 이는 지수, 또는 주가의 단순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상승 후 동 지수, 또는 주가의 ‘유지 가능한’ 수준을 뜻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주가의 큰 하락 없이 매도 가능한 안정적인 지수(가격) 수준을 의미한다.

금융위기에 의한 비이성적인 시장 폭락의 반작용으로, 지난 수개월간 전세계 주식시장은 폭등했다. 금융위기 역시 일단락되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개별 기업의 내실과 무관하게 시장 전체적으로 신용리스크가 대두되면서 헐값의 기업이 속출했다. 구체적인 분석이 없어도 글로벌신용 안정이라는 큰 그림에 근거하여 대다수의 기업들은 정상적인 가치 수준으로 상향 회귀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 올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주가 상승과 함께 정태적으로 헐값인 기업을 찾는 것이 그만큼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 레벨업의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물론 앞으로 기업이익만 계속 늘어난다면 아무리 높은 수준이더라도 주가는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골을 많이 넣으면 이긴다”와 같은 성격의 무의미한 표현이다. 단순한 이익증가, 그 자체는 아무런 잣대도 제공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익증가의 폭과 그에 대한 확신 정도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하나의 비즈니스 사이클을 바라보는) 장기 기업이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단기적으로’ 시장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당장의 수요를 가늠하고 파악해보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직접적으로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이다. 공급의 불변을 가정하면 기업(주식) 투자의 수요는 크게 세 가지의 경로를 통해서 온다. 첫째, 일반투자자(개인과 기관)에 의한 선택적 수요, 둘째, 공공 및 기업연금에 의한 강제적 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무투자자와 기업에 의한 인수/합병 및 (배당 포함) 자사주 매입 등의 프라이머리 마켓(primary market) 수요이다.

첫 번째 일반투자자들로부터 오는 가장 기본적인 ‘유지 가능한’ 수요는 크게 가처분소득, 물가, 그리고 금리라는 세 가지 함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조합은 가처분소득의 증가, 물가의 제한적 상승, 그리고 금리의 하향 안정이다. 그런데 금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국의 가처분소득은 작년 동기 대비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다른 시기는 차치하더라도 외환위기로 신음했던 1998년 상반기의 2.6%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관련 통계 작성 원년인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물가와 금리는 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가는 일반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수준으로 여겨지는 2% 중반까지 올라온 상태이고 시중금리(3개월 CD금리) 역시 2.8%대에 거의 ‘고정’되어 있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현 상황은 좋게 보면 중립적이고, 보수적으로 보면 소폭 부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 언급한 공공/기업연금의 역할은 국내 금융시장 특성 상 한정되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추가적인 수요 증진은 재무투자자와 기업의 프라이머리 마켓 수요에서 와야 한다. 특히 이 부분은 국내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지닌 외국인투자자들의 향후 포지션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특히 더 중요하다. 2004년에서부터 시작되어 4년간 진행된 시장 레벨업의 배경에는 글로벌유동성 확대와 글로벌 인수/합병 열풍이 국내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외국인들의 주주가치 극대화로 연결되는 ‘인과작용’이 있었다.

현재 글로벌기업의 M&A 수요가 가시화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하다. 타인자본을 끌어들이기 수월한 현 상황에서 2008년 기업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미국과 유럽 대표기업(S&P500과 DJ Stoxx Europe) 전체의 가중평균 EBITDA 배수(시가총액/(세전이익+이자비용+감가상각비용))는 약 6배에 불과하다. 현재의 가격에 근거하면, 이 가상의 기업(시장 전체)을 전액 타인자본으로 인수한 후, 감가상각을 포함한 설비투자(6.7%) 비용, 타인자본 차입비용(5.0%), 부도보험 비용(1.2%), 그리고 인수프리미엄(25% 가정)을 모두 제하더라도 43bp의 ‘무위험’ 수익이 남는다. 작년의 기업이익 수준이 ‘완전히 망가졌던’ 수준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다가 올 자본수명에 걸쳐 기대할 수 있는 평균의 ‘무위험’ 수익은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의 금리탄성과 통화정책의 무용성 증가, 과잉유동성에 따른 단기 하이퍼인플레이션 가능성, 약 달러와 경쟁적 통화절하(competitive devaluation)에 따른 국제교역 축소 가능성,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파생상품 거래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증가 등 세계경제의 구조적 아킬레스 건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필요로 하는 우려상황을 대변한다. 하지만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확정요소와 아직까지는 그리 비싸지 않은 (기업)가격의 조합은 전세계의 주식시장이 당분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금년 11개월 동안 미국에서는 화이자의 와이어스 인수(제약, 확정), 머크의 쉐링 인수(제약, 확정), 버크셔의 벌링컨 노던 산타페 인수(철도, 진행 중), 크래프트 식품의 캐드베리 인수(식품, 진행 중), 썬코에너지의 페트로캐나다 인수(에너지, 확정), 다이렉트-TV의 리버티 엔터테인먼트 인수(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확정)등의 굵직한 메가 딜들이 있었다. 유럽의 인수/합병 활동은 상대적으로 잠잠하지만 금년 유럽 기업의 채권 발행 규모는 미국 기업보다 훨씬 더 크다. 채권 발행에 따른 차입자본은 자본확충에 필요한 정도를 제외하면 결국에는 설비투자, 자사주 매입, 또는 인수/합병 투자 중 하나로(혹은 다수의 조합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인수/합병 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인수/합병 가능성에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세계경제의 두 축을 이루는 미국과 유럽이라는 거대시장에 내재된 정태적 가치는 단기적이긴 하지만 세계주식시장 전체의 견고성을 담보해 줄 것이다.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인수/합병 활동을 주시해야 한다. 이처럼 낮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인수/합병이 살아나지 않는 상황은 실물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전략 수정을 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동일한 밸류에이션 잣대로 본 국내시장의 매력도는 ‘상대적으로’ 소폭 떨어진다. 더 나아가 최근 추진되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 도입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2003년에서부터 시작된 외국인의 ‘바이코리아’ 배경에는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사외이사와 외부감사 임명을 의무화하는 등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 변경이 있었다. 높은 현금가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일본기업을 외면해 온 이유 역시 기업지배구조상 문제였다.) 영국의 권위 있는 금융지인 머니위크(MoneyWeek)는 11월 초, 기고문을 통해 국내시장에서의 포이즌필 도입 추진이 몰고 올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논했다 (출처: Chris Sholto Heaton, <포이즌필: 한국시장을 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Poison Pills: One More Reason to Avoid Korea)>, http://www.moneyweek.com, 2009년 11월 12일).

위의 머니위크 기고문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이즌필 제도 도입만을 본다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끼칠 경제효과 및 심리효과가 크든 작든 마이너스가 되리라는 전망에는 이견을 달기가 쉽지 않다. 국내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여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인수/합병을 화두로 하는 상기 시나리오가 가시화 될 경우 국내기업들은 그 중심에서 다소 벗어나게 될 텐데, 다만 소수일지라도 외국인들의 이익 실현은 향후 시장심리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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