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⑮] "창의적 사고가 초과수익 만든다"-송성엽
하얀 목 폴라 스웨터,편안한 청바지,대학생처럼 자유로운 옷차림….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빌딩 25층에 있는 KB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송성엽 주식운용 본부장(43ㆍ사진)은 옷차림부터 남 달랐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펀드매니저를 떠올렸던 기자의 상상과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펀드매니저는 생각이 자유로와야 하는 직업입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즘에는 많은 금융회사들이 자유복장을 권하고 있지만 송 본부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나 컨퍼런스 참석 등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넥타이를 잘 매지 않았고, 금요일에는 편안한 복장을 즐겼다고 한다.

"상장 기업들이 모든 사람에게 아주 공정하게 노출돼 있거든요. 누구나 다 어느 한 기업을 봤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똑같은 시각이 아니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똑같게 되는 거죠. 남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게 되는 것이고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게 되는 건데, 그래도 창의적인 사람이면 좀 다르게 볼 수가 있잖아요."

송 본부장은 인터뷰 직전 내 온 물과 종이컵을 보면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 테면 누구에게 이 종이컵을 줬을 때 어떤 이는 물을 따라 마시고 어떤 이는 재떨이로 쓸 수 도 있고 누군가는 뭉쳐서 팩차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세가지 모두 할 수도 있고요. 그런 것처럼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들, 생각의 폭이 넓은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한 면을 봐서 주식을 살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어요. 상대적으로 초과수익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거죠."

KB자산운용은 펀드매니저 한사람의 창의적 사고가 편견이 되지않고 운용에 도움이 되게 주식운용본부 차원의 논의를 거친다고 한다.

"혼자 운용할 경우에는 창의적 사고가 하나의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어 운용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팀워크를 통해서 그 사람의 판단이 한번 걸러지게 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는 회사의 시스템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매니저보다는 본부 전체의 의견을 모아서 운용에 반영하는 편입니다."

이 같은 송 본부장의 신념은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의 업무 스타일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 회사는 자유로운 가운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회의 형태를 정형화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운용 회사들이 매일 아침에 하는 모닝미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데는 모닝미팅을 매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모닝 미팅이 없습니다. 포멀(형식적인)한 회의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고요. 본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운용역이나 팀장 또는 저한테 따로 얘기하고 커뮤니케이션을 갖습니다. 매일매일 미팅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만큼 포트폴리오를 쉽게 변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만큼 중요한 정보는 굳이 모닝미팅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들어옵니다."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는 모닝미팅 대신 일주일에 2회 가량 공식적인 회의를 갖는다.

"포멀한 회의를 일주일에 두 번하면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그것에 집중해서 자료도 만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원래 일이 많으면 분산되서 집중하기 어렵잖아요."

◆ "투자시, 장기 성장성과 주주가치가 중요"

송 본부장의 창의적 사고는 KB자산운용의 운용 스타일에도 묻어난다. 그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 하게 여기는 것은 '장기적인 성장성'과 '주주가치'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⑮] "창의적 사고가 초과수익 만든다"-송성엽
"될 수 있으면 분기단위 이익변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좀 더 길게 보고 결국 이 회사가 1년 뒤 또는 2년 뒤나 3년 뒤 어떻게 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그런 종목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성장성이 있는 회사라도 현재 현금흐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꿈을 쫓다 망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종목으로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종목수가 적습니다."

또 다른 운용사들보다 좀 더 소액주주 가치를 중시 여긴다고 한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 어떻게 주주한테 돌려주는가도 중요합니다. 성장의 기회가 많은 회사라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돌려주지 않아도 관계가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 재투자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성장의 기회가 많지 않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현금을 계속 기업에 쌓아둔다는 것은 회사의 ROE(자기자본이익률)을 계속 떨어뜨리는 역할 밖에 안 되는 거죠. 결국 주주 가치 손상이고요."

송 본부장이 주주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최근 효성 매매에서 잘 나타난다. KB자산운용은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에 나서기로 했을 때 효성 주식을 손절매했다.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에 나서는 것 자체가 주주가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 본부장은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를 포기했을 때 효성 주가가 예전 수준까지는 안되더라고 많이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효성을 다시 매입하지 않았다.

"효성이 옛날 주가까지는 못 가더라도 많이 올라오긴 하겠죠. 하지만 다시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대주주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만일 효성이 소액주주 반대가 심해서 포기했다면 다시 들어갔을텐데, 정치적 부담 때문에 포기했다고 하니까요. 주주를 위해 안한 게 아니고 마지 못해서 안 했다고 하니까 다시 안 들어가는 거죠."

송 본부장의 창의적인 사고 덕분에 KB 신광개토증권투자신탁은 지난 4일 기준으로, 설정액은 6500억원이며 설정일인 2006년 1월31일 이후 53.36%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1년 수익률은 72.01%에 달한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⑮] "창의적 사고가 초과수익 만든다"-송성엽
◆ "내년 1분기와 4분기가 강할 것…2분기쯤 조정 전망"

송 본부장은 각종 경제지표를 빠짐없이 꼼꼼히 살핀다. 투자판단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크로 지표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냥 휙 보면 그 수치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거기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게 저희들이 해야할 일이고 그걸 잘 찾는 사람이 운용을 잘 할 것입니다."

그는 하지만 경제 상황 별로 특별히 더욱 신경써야 할 지표는 있다며 어느 국면에서는 환율, 어느 국면에서는 원자재 가격, 실업률 등등, 각기 중요한 때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런 시기에는 뭐가 중요하다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실업률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물가만 보고 있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지금 이머징 국가에서는 경기선행지수가 언제 고점을 치는지, 중국은 PMI(구매관리자지수), 미국은 실업률 데이터와 주택가격 등이 중요한 지표라고 봅니다."

이쯤에서 송 본부장에게 내년 증시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내년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는데 최근 증권사들의 2010년 증시 전망을 보면 '상저하고'와 '상고하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송 본부장은 내년 1분기에 상승했다 차츰 조정을 받은 이후 4분기에 연간 고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1분기와 4분기가 높다고 보는데 4분기 봉우리가 좀 더 높을 것 같긴 합니다. 내년 고점을 1800대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2분기 정도 조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고요. 하단은 1400~1500정도로 조정 폭이 크진 않을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1800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 본부장은 지금 기대처럼 경기가 좋아지거나 기대보다 좋지 않더라도 주가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부터 확인할 게 굉장히 많기 때문이에요. 둘 중 하나에요. 경기가 진짜 좋아지면 출구전략이 나와서 힘들어질 것이고, 생각만큼 좋지 않으면 실망매물이 나와서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출구전략이 나왔다가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민간소비가 늘어나거나 기업투자가 일어나면서 다시 좋아질 것이고요. 좋지 않으면 각국 정부가 뭔가를 더 쏟아 부으면서 하반기 주가를 다시 이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