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오랜만에 연일 '함박웃음'이다. SK C&C가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이후 주가가 상승해서다. SK C&C 주가는 지난 11일 상장 이후 16일까지 4거래일 동안 공모가(3만원) 대비 26.3% 급등했다.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 44.5%를 보유, 이를 통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의 여동생 최기원 씨도 SK C&C 지분을 10.5%나 보유중이다. SK C&C는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최대주주(지분율 31.8%)이기 때문에 '지주사 위의 지주사'로 꼽힌다. SK C&C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SK C&C의 상장으로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난제의 실타래를 푸는 동시에 상당액의 평가 차액도 챙기고 있다는 평가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최태원 회장의 주식지분 가치는 7981억원으로 올 초 대비 647.4%나 늘었다. 이는 상장사 주식을 1000억원어치 넘게 가진 주식부자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그러나 SK C&C가 잘 나가고 있는 탓에 ㈜SK 주주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SK C&C의 상장을 전후로 ㈜SK 주가가 급락하고 있어서다. ㈜SK 주가는 최근 한 달 새 17% 하락했다. 그간 SK그룹의 맏형 노릇을 하며 받아왔던 프리미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증시 전문가들은 ㈜SK 투자자들이 SK C&C로 갈아타고 있는 게 ㈜SK 주가하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명목상 ㈜SK가 지주사지만, 아무래도 오너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한 SK C&C에 힘이 실리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우철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SK C&C에 그룹의 역량이 집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SK 주주 입장에서는 '루저'로 전락한 ㈜SK 주식을 들고 있느니 이를 팔고 차라리 SK C&C 주식을 사는게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실제 개인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3개월 동안 ㈜SK 주식을 이미 76만여주나 순매도했다.

SK C&C와 ㈜SK의 합병 가능성도 ㈜SK 주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슈다. SK그룹은 장기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그룹내 지주사가 두 개나 있는 '기형적' 형태를 계속 유지하긴 힘들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 대주주가 지분을 들고 있는 쪽으로 유리하게 합병이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SK C&C 주주들은 환호할 테지만, ㈜SK 주주들은 한번 더 죽는 셈이다.

당장은 두 회사가 합병 하긴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SK가 SK C&C보다 덩치가 두 배 이상 크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합병을 하게 되면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그룹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SK C&C 주가가 지금보다 더 올라 ㈜SK와 엇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반대로 ㈜SK 주가가 현재보다 많이 떨어질 경우에도 합병은 가능하다.

㈜SK의 주주이자 고객이라고 밝히 한 투자자는 "이번 기회에 최태원 회장이 ㈜SK 주식을 조금이라도 사서 이 내용을 공시하는 한편, ㈜SK가 그룹의 지주사임을 천명하고 SK C&C와 합병도 안 할 것이라고 재확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